내 남자의 로맨스 - How to Keep My Lov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0. 유행대로 한줄 영화평을 써보자면 "나는 돈내고 봤지만 남한테 돈내고 보라고는 말 못할 영화"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뭐 상대가 김정은의 광팬이라면 모를까.

1. 요 10년간 한국영화가 놀랍게 발전한 건 사실인데, 올해 들어서 본 한국 영화, 특히 소품들은 다들 설정만 재밌고 시나리오의 짜임새나 뒷심이 없다. '어린 신부'는 문근영 보는 재미라도 있었고 '홍반장'은 김주혁 보는 재미라도 있었지...전혀 김정은 팬이 아닌 나에게는 이 영화가 올해 본 한국영화 중 제일 별로였다. 세 영화 다 뒤로 갈수록 짜임새가 떨어지긴 했지만 순위를 매기자면 시나리오도 이 영화가 제일 별로다. "노팅힐의 휴 그란트에게 오래된 여자친구가 있었다면?"이 이 영화의 테마라고 들었는데, 똑같이 엉성한 구도라면 난 차라리 헐리우드산 영화를 볼 거 같다. 왜? 풍경이라도 볼거리가 있잖아.

2. 제일 화가 나는 건 역시 주인공인 김현주(김정은). 내가 소훈(김상경)이었다면 은다영이 미인이고 잘나가는 여배우여서가 아니라 그 성격의 쿨함에 반해서 은다영한테 갔을 것 같다-_-. 남자친구가 별 거 하지도 않았는데 지레 겁먹고 온갖 오버로 은다영한테 경고하려는 현주의 모습은 제 3자가 보기에도 심하게 지겹다(원래 내가 푼수주책 여주인공을 좀 싫어하긴 하지만....) 거기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극중 현주의 모습은 남자친구를 정말 사랑해서라기 보다는 스물아홉에 유일하게 결혼할 가능성이 있는 남자를 놓치기 싫은 몸부림으로 보인다.

물론 영화는 7년간 둘이서 어떤 사랑을 가꾸어왔는지 단편적으로밖에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7년간 둘의 관계를 유지시켜 온 것이 소훈이 한번 기다리라고 하면 비가 오건 눈이 오건 가게가 닫건 올 때까지 기다리는 현주의 순정이었다면 "나만 바라보는 네가 부담스럽다. 난 네가 너 자신이었으면 해"는 소훈의 말도 백번 이해가 간다. 기다리라고 해놓고 까맣게 잊어먹고 집에 들어가버리는 소훈도 단순히 건망증이라고 봐 주기엔 심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뭏든 결국 그 여배우를 스토킹하는데 전력을 바치다 직장마저 짤리는 현주,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스물 아홉의 여자에겐 남자 말고는 중요한 게 그렇게 없단 말인가? 물론 영화는 현주가 소훈의 말을 듣고 스스로를 가꾸기 위해서 어학공부를 하고 번지점프를 하고 새 직장을 찾는 모습도 보여주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건 소훈이 그렇게 기다리는 프로포즈를 할 때까지, 그래서 그림같은 집에서 애를 넷이나 낳고(!!) 오손도손 살 때까지의 막간극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 비하면 은다영 쪽은, 뭐 가진 자의 여유일 수도 있지만 성격적으로 그야말로 쿨한 매력을 보여주는데, 그래서 마지막에 "현주를 잃을까봐 두려워서" 흔들린 적 없다는 소훈의 고백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더라. 내가 너무 시니컬한가?

3. 김정은이 연기 잘 한다는 건 알겠는데, 이전에도 나쁘지 않은 얼굴이었는데 왜 그리 고쳐댄 건지 눈 부분은 너무 어색해서 보기 민구할 정도다. 오승현 역시 만만치 않은지라, 두 여배우가 잡히는 투샷은 참...누가 누가 더 고쳤나를 대결하는 듯한 구도였다는. 거기다 둘 다 마르긴 얼마나 말랐는지, 특히 오승현은 정말 팔이나 다리를 건드리면 톡 부러질 듯이 말랐다. 김상경은 좀 살이 붙은 것 같았는데, 그 약간 부담스런 듬직함이 오히려 자연스러워서 좋아보일 정도였으니...

영화 보면서 비쥬얼상으로 제일 보기 좋았던 건 친구로 나왔던 이유진의 멋진 몸매였다.그 적당히 글래머러스하고 탄력있는 곡선은, 정말 토종 한국인에게선 나올 수 없는 걸까?

4. 요새가 PPL의 시대라고는 해도, 이 영화는 좀 심하다. 소훈이 세스코맨으로 설정되어 있는 건 그렇다 치고, 제일 깨는 건 마지막의 TGIF 광고. 그 빗속에서 기껏 만난 소훈에게 TGIF 박스를 내미는 현주의 모습은, 빨강머리 앤 중에서 앤이 공들여 쓴 소설을 베이킹파우더 회사 공모전에 공모하기 위해 다이애너가 고치면서 결정적인 남녀주인공의 청혼 장면에 "앞으로 우리집에서는 ** 베이킹파우더 말고는 쓰지 말도록 합시다"란 것을 넣었다는 걸 듣고 앤이 소스라쳤던 그 에피소드가 생각날 정도였다. 마지막 다 만든 필름을 보고 TGIF에서 자기네가 협찬한 비용에 비해 너무 노출도가 낮다고 딴지라도 건건가?-_-;;.

5. 아..정말, 국산이건 외국산이건 제대로 잘 만든 로맨틱 코미디 없나? 올해 들어 다른 영화들은 괜찮은데. 로맨틱 코미디는 보는 족족 다 아쉬우니...원래 로맨틱 코미디 무지 좋아하는데, 나이들면서 내가 바뀌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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