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 Troy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전반적인 감상은 스펙터클이 제대로 살아 있고 세 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지나가니 영화 그 자체로는 괜찮은 편인데, 원작인 일리아드는 제대로 말아먹었다-_-;;;라는 것. 이 영화가 미국 고고학계에서 평이 안좋다고 해서 어차피 영화인데 학계가 오버로군.했는데 이 정도로 맘대로 해놨으니 펄펄 뛸 만도 하다. 일단 일리아드 원작에서 엄청난 부분을 차지하는 신들의 이야기를 다 빼버렸고, 그 때문에 아킬레스의 죽음이 좀 이상해진 건 그렇다치고(그럴바엔 복숭아뼈에 굳이 화살이 꽂힐 이유도 없잖아-_-;;), 메넬라오스랑 아가멤논을 원작과는 판이하게 그렇게 죽여버린 건 좀 너무한다. 뭐 아가멤논이 죽는 순간 상당히 신나기는 했지만;;.

2. 제목이 트로이라 그런가, 보는 내내 트로이 쪽에 감정 이입. 주인공은 아킬레스인데도 등장인물 중에 제일 마음이 갔던 건 헥토르 쪽. 에릭 바나가 연기를 잘 한데다 헥토르란 캐릭터가 워낙 딱 싫지 않을 만큼 반듯하고 인간적인 영웅이라..에릭 바나의 영화를 찾아서 볼까, 하는 마음도 들었는데 필모그라피에서 제일 눈에 띄는 게 "헐크"라니..이건 좀-_-;;;.

3. 뭐 이건 굳이 영화만이 아니라 트로이 전쟁 이야기 나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파리스와 헬레네는 그야말로 민폐 커플이 아닌가-_-;;

헬레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런 남편이랑 사는데 파리스 같은 남자가 유혹하면 당연히 넘어가고 싶겠지만, 몰래 바람피우는 걸로 끝낼 것이지 같이 가잔다고 따라온 게 결정적 실수다. 차라리 원작에서는 아프로디테가 그렇게 만들었으니 변명거리라도 있지만. 가뜩이나 세상 최고의 미녀라 해도 전쟁의 원인이 될 만큼 가치있는 여자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영화 속의 헬레네는 미모마저 떨어진다-_-;;;.

파리스에 대해서는, 올랜도 블룸이 그 역으로 나온게 슬플 지경이었다 ㅠ_ㅠ. 반지에서 내가 제일 이뻐하던 요정왕자님이었는데, 어찌 그리 비겁하고 생각없고 우유부단하고 자존심 없는 인간으로 나온단 말인가!! 헥토르의 치명적인 약점은 그런 인간을 동생으로 둔 거였다. 메넬라오스와의 결투에서 지고 목숨을 구걸하는 장면에서는 그냥 죽어!! 죽으라니까!!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정도였고, "이런 놈 때문에 날 떠난 거냐?"고 지켜보던 헬레네에게 절규하던 메넬라오스의 심정이 너무나 이해가 갔다. 아킬레스가 파리스같은 놈의 화살에 죽는다는 게 억울할 지경이었으니...(아니 뭐 여전히 이쁘긴 했지만, 올랜도군, 다음에는 부디 좀 더 멋진 역할로 나타나주길;;;).

4. 아킬레스 역의 브래드 피트는 조금 미스캐스팅이 아닌가 생각되었지만, 회색인양 말대로 "나이 40에 그만큼 뛰어줬는데" 더 바라는 게 양심없는 거겠지. 몸매도 멋졌다 *_*.

브래드 피트라는 배우 보다도 아킬레스라는 캐릭터가 조금 문제가 있었던 것 같긴 한데..세속적인 영웅이 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고 삶에도 큰 애착이 없으면서 "후세의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기억해주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니, 뭔가 앞뒤가 안맞지 않은가-_-;;;. 좀 더 쿨하거나 좀 더 진지하거나 둘 중 하나여야 했다구. 기본적으로 영화 전체를 지배한 "후세에도 영광스런 이름을 남기고 싶다"라는 명제에 내가 별로 동의를 안 해서 그런건가..

브리세이스로 나온 배우는 소피마르소랑 컬리수를 섞어놓은 것처럼 생겼다..(거기에 소이현을 양념으로 친 거 같았다;;). 뭐 간만에 본 속 터지게 하지 않는 여주인공이긴 했다. 러브씬을 보면서는 저때 옷들은 벗기기가 지나치게 쉽구나;;;;싶었다는.

5. 원래 바보에겐 별로 동정을 안하는 편이라..도대체 트로이인들은 그 목마를 뭐하러 가지고 들어간 걸까. 파리스가 영화 전체에 걸쳐 그거 태워버리자고 딱 한마디 옳은 말 했건만 그 말 안 듣고 말야-_-;;;그러니까 망한 거라구!!

6. 영화 설정에 따르면 아킬레스, 헥토르, 아가멤논, 메넬라오스 다 죽고 살아남은 건 오디세우스 하나인데, 사실 이 영화에서의 오디세우스도 꽤 마음에 들었다. 그야말로 건전하고 상식적이면서 쿨한 타입인데, 아가멤논에게 "그럼 돌아갑시다" 할 때는 그 쿨함이 무지 웃겼다는... 후편으로 오디세이아도 만들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만들면 보러 가줄 생각 있음.

7. 나름대로 서양고대사 전공자;;이긴 한데, 글쎄, 글래디에이터보단 이쪽이 마음에 들었다. 공부 손 놓은지 오래되다 보니 인제는 이런 영화를 봐도 예전에 알았던 내용들을 많이 잊었구나 싶어서 슬프기는 하다. 앞으로 알렉산더나 한니발를 다룬 영화도 나올 거라는데...영화는 많고 공부도 좀 더 해야 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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