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와 같이 그 존재만으로도.

호미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07년 1월

그 이름만으로도 신작을 망설임 없이 집어들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것은 독자로서 무척이나 기쁜 일이다. 그리고 내게는 박완서 선생이 그러하다. 더 고마운 것은, 내가 좋아하는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박완서 선생은 무척 부지런하신 편이라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쓰고 계신다는 점이다. 독자로서 섭섭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을 기다리면 또 새 책을 만날 수 있으니 고맙고, 선생의 연세를 생각하면 더욱 고맙다.

이번 책도 그렇게 반가웠다. 선물상자 받은 어린아이처럼 포장을 벗기고 한 달음에 읽어내려갔다.

선생의 글을 워낙 많이 읽었으니 새롭지는 않다. 최근의 일상을 담담하게 써내려가신 글을 읽고 있으니 오래된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땅집으로 옮기신 후 선생의 주 관심사가 된 정원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조그만 뜨락 안에서 일년초, 다년초와 함께 풀 한포기인양 살고 계시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 선생의 말씀대로 자연이 하는 일은 다 옳다.

담담하다고 해 날카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세상을 긍정하고 세상 안에서 살아가지만, 그 부조리에 대해 눈감지는 않는 엄혹함도 여전하다. 그러나 그 지적이 상처 주는 비난이 아니라 고치기 바라는 비판으로 들리는 것은 선생의 글이 기본적으로 가지는 솔직함과 넉넉함 때문일 것이다.

책의 앞 부분도 좋았지만, 뒷 부분의 글들이 더 좋았던 것은 그 글들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세상을 등지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선생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인가 싶다. 서울대학교에서 명예박사를 받으면서 발표하셨다는 글을 읽으면서 특히 눈시울이 시큰해졌는데, 그 글에서의 간략한 선생의 인생 이야기가 고단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 어른들의 삶을 간략해서 더 가슴에 와 닿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문구 선생에 대한 추도사 역시 짠하게 가슴을 두드렸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어머니 이야기, 시어머니 이야기, 손녀 이야기를 하는 선생의 글은 참으로 따뜻하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글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것이 참 좋았다. 작가로서의 선생만큼이나 그 험한 시절 딸로, 며느리로, 어머니로, 할머니로 세상을 살아오신 우리 시대 한 어른으로서의 선생이 새삼 존경스러워진다. 누군가의 말대로, 박완서라는 이름은 우리 문학이 가질 수 있는 축복이다. 앞으로도 부디 오랫동안 선생의 글을 읽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