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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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미래라도 결국, 이야기는 사람들의 감정이기에 공감할 수 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 - 김초엽 

ㅁ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란 책을 알게 된 것은 그리 멀지 않았다. 이 책이 일단 출간된 날도 얼마 되지 않았다. 2019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처음 선보인 책으로 알고 있는데, 나 역시 그 곳에서 김초엽 작가님과 이 책을 알았다. 그 땐 장강명 작가님의 책을 보려고 갔던 건데, 불쑥 마음에 끌려서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이 책을 구매했다. 충동적으로 구매한 책이었고, 제목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대게 나의 충동적 구매는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애초에 내가 실망을 잘 안하는 성격이라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도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책을 만나서, 또 새로운 작가님을 알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  

ㅁ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이 책은 김초엽 작가님의 단편소설집이라는 점, 그리고 작가님의 첫 책이라는 것. 그리고 SF(Science Fiction)라는 장르의 책이라는 점이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2018년에 있었던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의 대상과 가작 모두를 차지하면서 작가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중에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가작인 작품이었고, 안에 [관내분실]이란 소설이 바로 대상이었다. 여기서 궁금했던 건, 왜 대상 작품이 아닌 가작 작품을 제목으로 선정했을까 궁금했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다. 언젠가 말이다. 그리고 그 때, 이 책이 과학소설인걸 알았다. SF라고 하면 뭔가 스타워즈나 손에 닿지 않을 미래를 생각하기 쉽지만, 난 이 책을 통해서 그런 것만이 SF는 아니라는 걸 알았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실린 모든 작품들에게서 공통된 특징은 바로 엄청 먼 미래임에도 감정적으로 지금 시대외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그것은 기술적인 미래, 엄청 발달된 과학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발달된 시대에도 결국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라서, 지금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섬세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무척 재밌다. 과학적인 이야기는 전개를 위해 가미된 조미료같은 기분이랄까. 

ㅁ 예전에는 SF라고 하면 뭔가 조금 소수만이 즐기는 장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판타지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전혀 그런 게 아닌 줄 알면서도, 또 다른 소설처럼 비슷하게 있을 법한 이야기이면서(단지 그 있을 법한 이야기가 미래의 이야기라는 점이겠지.) 난 왜 그렇게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 모르겠다. 사실 막 찾아보고 그런 생각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마 근 몇 년 사이에 읽은 소설중에서 과학소설은 이게 처음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는데, 이런 과학소설이라면 대중적으로도 엄청 호응 받을 수 있는 소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분명히 나처럼 과학소설을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김초엽 작가님의 책은 정말로 편견을 깨뜨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그런 느낌이다. 해리포터 책이 판타지 책이지만 대중적으로 엄청난 호응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과학 소설도 충분히 그런 경우가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ㅁ 여러 단편소설중에서 가장 재밌었던 건 소설집 제목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이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과학소설이겠지만, 오히려 지금 시대의 이야기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저 흐름에 과학적인 요소가 조금 들어있는 지금 시대의 소설. 경제성을 따지는 어떤 거대 조직과 결국 경제적 논리로 틀어져버린 한 사람의 일생이 지금 시대에서 곳곳에서 들리기 때문이었다. 이게 과학소설이라는 점은 간간히 들리는 우주선과 로봇에서 알 수 있지, 결국은 우리네 사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아마 배경이 지금 시대였다면, 씁쓸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사회의 불평등을 느끼기엔 너무 약한 내용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게 과학소설이라서 그런 부분보다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이 있는 곳에선 결국 비슷한 감정과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p. 181~182
ㅁ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약간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어릴 때면 한 번쯤 생각해보는 영웅들의 인간적인 면모는 꼭 뒤늦게 알려지고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진실을 알게 될때 느끼는 허탈감이랄까? 아마 그걸 소설 초반의 가윤(주인공이다.)이 느꼈던 게 아닐까. 마지막으로 가면 결국은 조금 다른 감정으로 끝나지만, 초반에는 그런 점이 무척 끌렸다. 그리고 다 읽을 때쯤엔, 가윤의 영웅이었던 재경의 마지막 선택에 어느정도 이해가 되기도 했다. 우리가 그렇게 알고 탐구하고 싶은 것들이 사실 그저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우린 그 과정에서 잘 깨닫지 않으니까. 결국 확인하고 나서야 깨닫는 감정들이니까. 재경은 그걸 조금 일찍 깨달았을 뿐이라고 난 생각했다.

ㅁ 마지막으로 대상 작품인 [관내분실]에 대해 말하고 끝내고 싶다. 이걸 읽으면서 난 내 어머니를 생각했다. 딱 지금 내 나이대의 어머니들이 소설에 나온 ‘엄마’의 삶과 많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물론 난 결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모녀관계라서 그런걸까 싶었지만, 아니면 내가 아직 부모라는 입장이 되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어쨌든 그곳에서 난 나의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화가 나면서도 동시에 원래 그렇게 되는 게 정상인가 그런 오묘한 마음이 오히려 기분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 슬펐다. 괜히 미안해졌다. 내가 뭐라고 그렇게 하셨는지… 읽는 내내 마음이 영 불편했다. 

ㅁ 소설에 대한 간단한 평들을 남기다보니까, 내가 지금 과학소설을 읽은 게 맞는지 모호해졌다. 결국 쓴 내용들이 스토리에 대한 의견뿐이라는 점에, 소설에 장르가 중요한게 아니겠구나. 그런 생각도 했다. 과학적이든 아니면 판타지처럼 아예 있을 수 없는 이야기든, 결국 사람들이 등장하고 관계가 발생하면 그건 시대불문하고 감정의 흐름은 종족이 바뀌지 않는 이상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상이 되려면 애초에 사람이 아니어야 할까. 기존의 우리들의 상식을 벗어나야 할 것 같다. 감정이 소설이고, 과학적이냐, 아니면 말도 안되는 마법같은 것들은 그저 감정을 더 효과적으로 들춰내는 장치? 정도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읽은 과학소설은 나에게 준 것은 바로 감정. 사람들이 만나면 발생하는 어떤 감정이 우리네 세상이고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탐구하고 천착하는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을 이해해보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 어디서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 서로를 이해하려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싶다.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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