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구도 주인공이 아닌, 모두가 주인공일지도 모르는 세상의 이야기
[피프티 피플](창비) - 정세랑

ㅁ 이 책의 시작은 라디오였다. 라디오에서 이 책이 소개되었고, 내용이 무척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억해뒀다가, 이번에 구매해서 읽었다. 제목 그대로 50명, 정확히는 ‘약 50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책이다. 소개되는 다른 책과 다르게 특이했던 건, 그 인물들이 하나의 챕터를 가지고 있고, 그 곳에서 각자 모두 주인공이라는 점이었다. 그 점이 몹시 재밌다고 라디오를 들을 당시에 생각했다. 단지 그런 방식의 이야기가 재미있어 보여서 읽기 시작한 책이었는데, 다 읽고 말하자면, 이 책을 안 읽었으면 어쩔 뻔 했을까 싶을 정도로 재밌고 소중한 책이 되었다. 진짜 너무 재밌으면서, 동시에 여러 가지로 생각할만한 지점도 엄청나게 많았다.  

ㅁ 재밌는 몇 가지를 먼저 언급하면, 일단 50명이나 되는 주인공들이 다른 곳에선 잠깐 등장하는 조연으로 표현되는게 너무 재밌었다. 어떤 인물과 이런 관계였고,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면, 마치 소소한 퍼즐을 푸는 기분으로 찾는 재미가 있었다. 주인공의 아내였던 자가, 어느 순간에는 주인공이 되고 그 사람이 우연히 만난 사람이 그 다음 챕터의 주인공이 된다. 보통의 소설은 어떤 정해진 주인공들이 주변의 조연들과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런 점이 기존의 소설과는 다른 차이였으며, 나는 이 부분이 무척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의 중심이 특정한 한 ‘삶’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삶이기 때문이었다. 한 점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원이 아니라, 여러 점들이 연결되어 있는 ‘그래프’ 같았다. 난 이것이야말로 세상이라고, 우리들의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소설들은 하나의 중심으로 그려지는 원 같은 이야기라서, 그 중심에 나를 넣지 못한다면, 약간 심심할 수 있지만, [피프티 피플]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주인공일 수 있다는 것은 그 중 하나는 읽는 사람과 비슷할 수 있다는 의미니까. 그리고 사람들의 삶도 비슷하게, 나의 이야기에서 스쳐가는 사람은 그 사람의 삶에서 주인공인 것처럼 소설이 바로 그 점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피프티 피플]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돌아가는 세상의 이야기’인 셈이다. 

ㅁ 주인공이 50명쯤 되니까, 그 인물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는 재미도 있었다. 나는 대충 5명이 있었고, 그 인물이 좋을 때도 있지만 그 인물이 주인공인 시점의 분위기와 상황, 아니면 인물의 심리가 좋았다. 물론 인물 자체가 좋을때도 있지만, 그 주인공에 대한 내용이 그렇게 길지 않아서, 확 좋아할 순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점도 [피프티 피플]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이다. 보통은 주인공이 이렇게 많지도 않으니까. 동시에 궁금했던 건, 어떻게 50명의 인물들이 제 각기 다른 성격을 보여주는데, 그걸 한 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진 걸까 참 놀라웠다. 마치 50명의 삶을 겪어보지 않고서도 가능한 일이라니… 책을 읽으면서 세세한 묘사를 보다가 새삼 작가님의 능력에 감탄했다.  

사람의 얼굴이 들어 있거나, 물체의 명확한 윤곽선이 보이거나, 강렬한 색이 있는 조각은 제자리를 찾기 쉬운데 희미한 하늘색 조각은 어렵습니다. 그런 조각들이 쥐었을 때 문득 주인공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p. 392 작가의 말 中
ㅁ 이 소설이 너무 좋았던 것은, 읽다가 문득 느껴지는 삶의 ‘조각’이었다. 이건 요즘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설명이 우선 필요하다. 요즘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모두가 비슷하지만 그저 살아가는 대로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던 와중에 읽은 [피프티 피플]에서 여러 순간들을 만났다. 가게를 운영하고 문을 닫은 뒤 그 때를 그리워하는 사람의 이야기기. 건축을 전공하려는 학생의 이야기. 과거에 인연을 다시 만나고 살짝 설렘을 느낀 젊은 사람의 이야기. 이런 순간들, 장면들에게서 난 내가 좋아하는 순간을 발견했다. 그게 바로 앞서 말했던 삶의 ‘조각’이라고 난 말하고 싶다. 내가 느껴보지 못한 ‘조각’을 간접적으로 느껴보고, 그리고 좋아하는 ‘조각’을 찾는 일이 이번 소설에서 많았던 것 같다.

ㅁ 소설의 특성상 여러 사람의 상황을 보여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피프티 피플]의 한 순간을 뽑자면 난 마지막 챕터라고 생각한다. 영화관에 모여있는 장면인데, 그 장면이 난 이 소설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의 말에서 말하듯, 50명이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이 없는 소설.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도 그저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지만, 사실 세상은 자신 위주로 돌아가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인연이 되고 스쳐지나가기도 하지만, 결국 세상에 주인공은 없는 것. 이 소설은 단지 50명이지만, 70억명이란 전 세계 사람들을 압축시켜둔 이야기라고. 만약 누군가 소설을 물어본다면 난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올해 읽은 소설들 중에서 정말 재밌고 빠르게 읽은 책이었다. 시기도 하필 이것저것 뭘 할지 모르는 순간이라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한창 궁금한 시간이라서, 실제 존재하진 않지만, 존재하는 것 같은 50명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에게 많은 생각과 감정을 준 것 같다. 정확히 뭘 주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확실히 읽기 전과 후로 뭔가 달라진 기분이 든다. 그리고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고 말한 적은 많지만, 동시에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 건 정말 오랜만이다. 
이런 소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잔잔하면서도 동시에 재밌고, 그리고 따듯한 무언가를 전해주는 소설. [피프티 피플]. 너무 좋고 재밌고 잘 읽었다. 마지막은 가장 좋아했던 문장으로 끝내고싶다. 그 말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런 우연스러운 순간들이 결국 세상이니까 말이다. 

호감. 가벼운 호감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일들이 시작되는지. 좋아해서 지키고 싶었던 거리감을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나서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는데, 어쩌면 더 좋은 기회가 온 것인지도 몰랐다.

- p. 248


한사람 한사람은 미색밖에 띠지 않는다 해도 나란히 나란히 자리를 찾아가는 그런 이야기를요. - P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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