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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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학에서 사회까지, 집단에 만연하는 문제를 지적하다.

[당선, 합격, 계급](민음사) - 장강명


   ㅁ 먼저, 제목보고 생각난건, 예전에 읽은 작가님의 책이 떠올랐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란 소설이었는데, 그곳의 장(章)이 저런 방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두글자 단어 세개로 이뤄진 장을 보면서, 그 내용을 추측하곤 했는데, 또 다시 그런 걸 작가님한테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당선, 합격, 계급이란 세 단어를 제목으로 둔 이 책은 그럼 무엇을 말하는지 정말 쉽게 알 수 있지 않은가?

 장강명 작가님의 소설이 아닌, 르포형식의 책이다. 르포라는 말이 생소할지도 모르겠다. 르포란 르포르타주의 준말로 우리나라 말로 하자면, 현장보고서 쯤 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어쨌든 소설가가 갑자기 왜 이런 걸? 이란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장강명 작가님이라면 충분히 좋은 르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장강명 작가는 소설가로 등단하기 전에 기자로 생활한 적이 있는 걸로 안다. 한 마디로 그는 이런 글을 쓰는데 이미 엄청 익숙하실테다.


   ㅁ 소설가분들이 가끔 산문집이나, 에세이를 쓰는 건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이런 형식의 글을 쓴다는 건 몹시 생소한 일이지 않을까? 그가 예전에 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 뒤에 소설가로서 살게 된 것이 [당선, 합격, 계급]이란 결과물로서 등장한 건데, 이런 걸 보면 문득 여러 경험들이 뜻하지 않는 새로운 걸 만들어 내기도 하는 걸 느낀다. 그가 기자생활을 안했거나 그냥 그대로 있어서 소설가가 되지 않았다면, 이런 책을 쓸 수 있었을까? 아마 불가능 하지 않았을까.


   ㅁ [당선, 합격, 계급]은 (제목에서부터 느껴지지만) 등단이란 제도가 만든 문단이란 하나의 계급에 대한 보고서다. 등단, 공모전이란 제도가 문단(문인들의 사회)라는 집단을 하나의 계급적인 요소로 만들고, 합격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구분하는 성벽으로서 여겨지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 작가님은 거기서 끝내지 않고 이를 사회 전체로 확대하여 해석한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가 모두 비슷한 틀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걸 지적한다. 가령 직장만 보더라도, 직장이란 성 안에, 채용이란 성벽을 두르고, 합격이란 통행증을 몇몇 사람에게 나눠주며, 성 안에 있는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구분한다. 작가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견고하고 점점 높아지는 성벽화된 제도(공모전이든 채용시험이든, 어떤 형식으로든)들과 안의 사람들끼리 공유되는 성이란 '집단'을 조사하고,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ㅁ 처음엔 단순한 공모전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는데, 그게 점점 커지더니 끝에선 집단과 집단을 구분하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정확히는 두 점을 비교하면서 해석을 넓여가는 느낌이었는데, 그것이 이 책이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라, 어떤 기사, 보고서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심지어 문장조차다 딱딱 끊기는 듯한 느낌으로 사실만을 전달하려는 느낌이 들었다. 객관성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노력도 보였지만,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쓰다보면 주관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니... 그정도는 살포시 넘기자. 그럼에도 인터뷰의 내용을 그대로 실어 왜곡될 수 있는 지점을 최대한 피하고, 치우치지 않으려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동시에 나열하는 것(가령 공모전이 등단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분하는 일종의 성벽이 되었지만, 공모전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는 점을 언급하기도 한다.)들을 본다면, 사실만을 전달하려는 작가님의 노력이 엿보인다.


이 취재는 살인 사건이나 비리 의혹을 조사하는 것과는 다르다. 사건 취재가 아니라 시스템 취재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시스템 안에 있으니까, 외부의 시선이란 게 존재할 수 없는 거다. (중략) 그러므로 이 시스템을 취재하려는 자는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한계와 선입견을 지니고 시작할 수밖에 없다.

p. 20


   ㅁ 결론은 조금 뻔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 뻔한 걸 잘 실행하는 게 엄청 어렵다는 걸 새삼 느낀다. (결론은 책을 보시는 걸 추천한다.) 보다보면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답답하기도 하고, 그 자체가 어쩔 수 없단 생각도 들고, 그래서 조금은 심란해진다. 사회구조적 문제는 항상 이렇다. 생각보다 간단해보이면서도 뒤로 엮여 있는게 너무 많기 때문에, 손쉽게 바뀌지도 않는다. 거기에 몇몇 사람도 아니고 수백만 명의 생각을 어떤 틀로서 반영하는 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런 걸 보면 턱- 막힌 막막함이 회의감으로 올라오곤 한다. 사회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한낱 사람이 어떻게 영향력을 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걸 알면서도 말이다. 작가님 역시 그런 말을 한다.


내가 말하려는 바는, 그런 운동이 언제나 사회 한구석에서 일어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한 모퉁이는 늘 그렇게 부글부글 끓는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다. 가난하고 배경도 보잘것없는 젊은 감독이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친구들과 후다닥 영화를 찍고는 돈방석에 올라야 다른 가난한 천재들이 희망을 품고 영화에 도전한다. 이런 일이 꾸준히 발생하지 않는 분야는 18세기 조선처럼 시대에 뒤떨어진다.


p. 161

 예전에 '하루를 담는 문장'에서 쓴 어떤 분야에 있는 일반인, 아마추어, 전문가라는 세 부류가 활발히 소통이나 공유가 잘 되어야 한다는 것과 조금 비슷한 맥락이라 생각한다. 그 때도 말했듯이 과연 우리 사회에 이렇지 않은 분야가 얼마나 될까. 일단 난 모르겠다. 그런 분야가 없는 것 같다. 내 눈에만 안 보이는 것이였으면 좋겠다.


   ㅁ 사회구조적인 부분의 지적이 개인적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대체로 내 생각과 비슷한 면이 많았고, 그래서 좀 공감하면서 읽었다. 물론 작가님의 지적이 좋았다고 해결방안이 좋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기억나는 해결방안은 바로 이 곳이었다. 교단에 서는 선생님들이 토익점수가 450점도 안되는 현실에 대해 작가님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토익 점수가 낮은 영어 교사를 해고하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사서 교사, 상담 교사로 전직하게끔 한다든가 다른 행정 업무를 맡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실력 있는 젊은이를 채용해 빈 자리를 채우게 하면 되지 않을까?

p. 319

 과연 저게 올바른 일일까. 물론 실력있는 교육자들을 교단에 세우는 일이 틀린 게 아니다. 이를 위한 평가제도를 도입할 필요도 개인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다른 행정 업무를 맡도록 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다른 직책으로 전직한다면 그 자리를 바라는 다른 젊은이들은 무엇이 되는가.

 이것은 사실 외줄 타기처럼 그 균형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른다. 직책에 대한 적절한 순환이 필요하고, 거기에 순환에 밀려 누군가 떨어져버리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현실적으로 상충되는 법인지라, 정말 적절한 균형 유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작가님이 무작정 저렇게 하자고 극단적으로 주장하실 분이 아니란 걸 알지만, 그런 부분을 언급해줬으면 더 좋았을지 않았을까?


   ㅁ 책은 공모전과 공채라는 제도에서 시작하여, 시험과 간판으로 이뤄진 사회에 대한 문제 지적으로 끝이 난다. 이런 사회구조적인 지적을 보지 않더라도, 문인 사회와 공모전으로 국한하여, 작가님이 직접 경험했던 소설가들의 사회, 문인의 사회가 어떤 시스템으로 구축되었는지 엿볼 수 있다. 더군다나 공모전에 대한 이야기, 서평이나 합평에 대한 이야기, 등단과 미등단 작가님들의 미묘한 관계. 이런 건 사실 밖의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문인사회라는 성을 한 번 슬쩍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책이다. 어느 책에서 이런 문학이란 곳의 시스템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특별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ㅁ 개인적으로 글을 쓰고 싶은 사람으로서, 공모전이나 이런 곳의 정보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괜찮다. 물론 그게 주된 내용은 아니었지만, 어디서도 배우지 못한, 들어보지 못하는 정보들이기 때문에 이 책만큼은 소장하고 있을 것 같다. 사회적인 문제도 먼 미래엔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하기도 하니까. 간만에 굉장히 좋은 주제인 책이었고, 그만큼 다른 분야에서 이런 책들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살며시 가져본다. 

문학사회를 구성하는 제도적인 면에서도,
더 넓게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시스템의 관점에서,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아주 특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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