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4일의 문장


일어날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이 나를 운명 앞에 겸허한 사람으로 만든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오늘 이 자리마저 겸허하게 받아드리기에는 내가 부족한 점이 다소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 밖에 없고, 그 점은 어쩔 수 없이 조금 분하다고, 다음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철저히 준비해서 이 회사를 내 운명으로 만들겠노라 말했다.


[점선의 영역](창비) - 최민우


ㅁ 회의주의의 끝판이라고 생각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날테고, 그 자체에 분노하게 된다는 논리.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운명이라는 게 정확히 있는 걸까?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운명을 극복하는 것 자체가 알고보니 운명이라면, 


그건 운명을 따르는 것일까 아니면 운명을 극복한 것일까?


애초에 정해진 미래가 있긴 한걸까? 미래가 정해져야 운명이라는 단어가 그 의미를 갖는 거니까.


과학에서 보면, 결정론적인 미래는 이미 깨져버린지 좀 됐음에도,


우리는 살면서 결정론적인 사건들을 보기 마련이다.


물건을 던지면 당연히 떨어지고, 그 위치를 확실하게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변수가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게 완벽하게 결정된 건 또 아니기에,


확률적 결정론이라는 이론이 생겼다. 약간의 절충안처럼,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는 확률이


존재한다는 그 주장은,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라고 말하는


뭔가 애매한, 그리고 대답을 회피하는 기분이 든다.


모든 게 결정되어있단 논리는 사람을 겸허하게 만들다 못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반면 확률적 결정론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그냥 모르겠단 대답이랑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예측은 가능하다는 점에서 좋은 논리다.


어느 쪽이든 이현령비현령 쓰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말이다.


ㅁ 하루를 담는 문장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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