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작가가 읽은 세계문학 - 나의 읽기, 당신의 읽기
황석영.성석제.김연수.천명관.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 작품, 시대 그리고 나. 문학에 대한 이미지를 깨다

[한국 작가가 읽은 세계문학](문학동네) - 황석영 외 51명


ㅁ 리뷰를 쓰기 앞서서, 난 문장이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페이지, 그리고 기억해둬야 겠다고 생각한 페이지가 있다면 그 윗 모퉁이를 접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내가 읽은 책들은 모두 귀퉁이가 접혀있는 걸 알 수 있는데, 그 양에 따라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얼핏 살펴볼 수 있다. 나에게 영향이 많은 책인 걸 판단하는 하나의 지표인 셈이다. 이 책, [한국 작가가 읽은 세계문학]은 그런 지표 top 5안에 들어갈 정도로 많은 부분을 접었다. 역시 글을 쓰는 분들이라 많은 문장이 좋았고, 무엇보다 책 자체가 재밌어 보이는 부분도 많았고, 그래서 많은 곳을 체크했다. 


ㅁ [한국 작가가 읽은 세계문학]은 제목 그대로다. 우리나라의 작가들이 하나의 세계문학작품을 읽고 쓴 리뷰모음집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작품들이 유명한 고전인 부분이 많다. 문득 든 생각은 왜 하필 한국작가들이 읽어야 했으며, 두 번째는 왜 세계문학만을 읽은 걸까? 이 두 가지가 책의 첫 장을 펼치기 전에 든 의문이었다. 읽고 나서야 약간 감이 잡혔다. 한국작가인 건 우리 정서를 글로서 표현하는 데 탁월한 솜씨를 가진 분들이어야 했기 때문이었고, 세계문학인 건, 보편적인 사람들의 정서에 관한 이야기를 보기 위해서? 라고 한 번 추측해본다. 어쨌던, 세계문학이지만 고전들도 많고 정말 들어보지 못한 책들도 많다. 하지만 나름 유명한 책들이기 때문에,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고 모든 저자들이 말하고 있었다.


ㅁ 리뷰모음집이라고 말하고 결국은 서평집인 셈인데, 서평을 쓰는 나로선, 많은 감흥을 받았다.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그런 생각도 해보았고, 단순한 생각의 나열이 중요한 게 아니라, 책에 대한 뭐랄까... 어떤 지점? 중요한 포인트를 좀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깊게 생각해야 하나보다. 지금도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정말 어떻게 하면 [한국 작가가 읽은 세계문학]의 서평들처럼 글을 쓸 수 있을지... 내 서평이 몹시 가냘프고 하찮아보인다.

동시에 서평을 읽으면서, '아 한 번 읽어보고 싶다.'라는 느낌을 줄 정도로 좋은 글들이 많았다. 곳곳에 모퉁이를 접어두었는데, 고전을 읽어야겠는데 뭘 먼저 봐야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 더할나위 좋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책을 통해 한 10권은 챙겼고 읽을 예정이다.


ㅁ 첫 서문을 작성한 도정일 문학평론가은 첫 문장을 이렇게 선언한다.


문학은 이상하다.                                                                     p.5

그렇다. 정말 이상하다. 도통 거짓들로 이뤄진 이야기를 왜 읽는가? 우린 소설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비문학 같이 정보가 담긴 글도 아닌데, 왜 거짓말로 꾸며낸 이야기를 우린 읽어오고, 출판하고, 명작이라 불리면서 오랫동안 남기고 있는가.

이 책을 손에 처음 잡았을 때가 생각났다.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난 고전을 잘 읽지 않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현대문학, 특히 한국문학을 주로 읽는 사람이었는데, 고전은 무엇보다 내가 공감을 할 수 없었다. 이름부터가 일단... 그리고 문화자체도 이해하지 못했고,(특히 그 나라만의 용어가 막 튀어나오면 정말 읽기 싫어진다.) 이상한 번역투의 대화체도 영 좋지 않았다.(이건 번역의 문제일까...) 어쨌든 그러던 와중 [한국작가가 읽은 세계문학]을 보았고, '들어가는 말'을 읽었다. 들어가는 말의 제목이 '문학전집 왜 읽는가?' 였다. 이만큼 나에게 딱 맞는 책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난 지금 이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 확실한 건 덕분에 몇몇 고전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정도면 이 책은 자기의 가치를 충분히 뽐낸게 아닐까. 내가 발견한 답은 결국 도정일 평론가님이 첫 글에 하신 말로 대체할 수 있다. 처음엔 몰랐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걸 이해하고 받아드릴 수 있었을 뿐이다.


문학의 나라에는 최소한 네 종류의 구성원들이 참여한다. 작가, 작품, 독자, 그리고 시대가 그 구성원이다. 이 구성원들이 문학의 공동체를 이룬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이들 네 구성원들 사이의 대화, 협상, 경청의 과정이다. ...(중략)... 나의 읽기에 변화를 일으키고 나의 문학경험을 풍요하게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당신의 읽기, 그 여자의 읽기, 그 남자의 읽기다. 나와 당신과 그가 같은 작품을 놓고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문학공동체는 대화의 공동체, 마음의 공동체, 소통과 이해와 공감의 공동체가 된다.

p.10 ~ 11

난 문학의 공동체에서 시대라는 구성원을 바라보지 않고 소통하고 대화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시대라는 구성원을 현대만 바라본 걸지도... 전자든 후자든, 내가 시대라는 구성원을 소홀히 한 건 확실하다. 그 뒤로 고전을 조금씩 읽으려고 한다. 문학의 공동체를 모두 아우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ㅁ 유명한 작가들도 계시고, 처음 들어본 작가분들도 계신다. 그들이 쓴 하나하나의 리뷰를 읽으며, 그 분들의 이미지를 떠올려보기도 하고, 내가 아는 고전이라면 그와 어떤 점을 다르게 느꼈는지 읽는 재미도 쏠쏠한 토론의 장이 되었다. 처음 보는 책이라면 언젠가 읽을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51개의 글들이 세계문학에 대한, 그리고 한국작가들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주었다. 문학에 대한 큰 틀이 깨진 순간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즐거움과 영광을 위해 이런저런 방식으로 이런저런 작품들을 읽어낸 이런저런 독자들의 작은, 그러나 값진 기여다.


p. 11 도정일 문학평론가 '들어가는 말'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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