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하여
장석주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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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오래된 감정, 사랑에서 찾은 우리네 이야기
[사랑에 대하여](책읽는수요일) - 장석주



   ㅁ 단순하게 말하면 단정적인 어구로 돌려말하는 문장이 많았던 책. 어쩌면 흔해빠진 주제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봤을 ‘사랑’의 표면부터 이면까지, 엄청 섬세하게 표현했다. 제목부터 [사랑에 대하여]라고 쓴 걸 보면서 엄청 단정적이라고 생각했었다. 꾸밈 없이 딱 할 말하는 느낌이다. 그 단단한 말투로 문장을 엄청 강하게 묘사한다. 섬세하단 말은 결국 그걸 표현하기 위해선 디테일한 묘사가 필요하단 걸 깨닫는다. 전반적인 느낌은 그렇다. 어쨌건, 다시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서, 흔해빠진 사랑이란 주제를 어떻게 묘사했을까. 제목도 [사랑에 대하여]라고 단정짓을 정도라면 있는 그대로 표현했을텐데 그 자신감이 궁금했다.

   ㅁ 그렇게 [사랑에 대하여]를 읽기 시작했다. 책도 생각보다 얇은 편인데, 내용은 그 이상으로 빡빡하다. 아니 꼼꼼하달까. 사랑에 대해 쓰기 전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본질적으로 사랑은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첫 챕터가 아마 ‘혼자’였다.)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사랑에 대한 저자의 고찰에서 여러 참고자료(정말 많다. 사랑에 대한 글을 이렇게나 많이 쓴걸까 싶다.)를 읽고 발췌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고 다듬어진다. 그리고 그 결과를 여러 주제로 나눴다. 참고된 저서들은 사랑에 대한 나름 유명한 책이다. 물론 난 다 읽어보지 않은 책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책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개념들을 구체적 경험의 영역에서 재검토하고, 모호하고 추상적인 착상들이 윤곽과 형태를 드러내기를 기다린다. 책들은 무한을 향해 열린 기다림을 먹고 자란다. ... 기다림 속에서 생각들이 흩어지고 모이기를 되풀이할 때 생각의 지체와 유예로 애태우지만 기다림 안에 머무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은 없다. “시간 속에서 기다림은 끝나지 않은 채 그 끝에 이른다.” 그러헥 아주 더디게, 기다림 안에서 기다림이 불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들 즈음 응고되고 맺혔던 사유들이 풀려나온다. 
p.32~33
(밑줄 : 모리스 블랑쇼, [기다림 망각], 박준상 옮김, 그린비, 2009, 86쪽)

   ㅁ 그냥 슥- 읽으면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꼼꼼히 살피면 어떤 느낌을 표현하는지 알 수 있다. 첫 문단에서 말한 게 바로 위 문장 같은 느낌이다. 책에 나온 대부분의 문장이 직설적인 표현이 아니라 약간 돌려말하는 방식의 시적인 느낌이다. 하지만 문장의 단단함은 비문학만큼이나 단정적이다. ‘~ 할 것 같다.’라던지 ‘~일지도 모른다.’와 같은 애매한 문장이 하나도 없다. 딱딱 끊기지만 정확히 제시하는, 그러나 내용 자체는 시적인 그런 문장들이다. 뒷표지에 있던 섬세하단 말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ㅁ 구조적인 부분을 지나 내용을 돌아보면, 무엇보다 특이했던 부분이 있었다. '낭만적 사랑'과 요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이게 정말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인데, 과거의 사랑과 현재의 사랑을 비교해둔 부분이다. 책 초반부에 나왔는데, 확실히 비교가 쉽다. 과거의 사랑이라고 하면, (물론 과거를 살지 않았지만) 사랑이 정말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랑때문에 나라가 멸망하는 건 기본이며, 사람도 죽고 가문도 날라가고... 사랑 하나로 잃는 것들이 무지하게 많다. 하지만 현대는 다르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사랑은 한낱 사치이고, 결혼도 적어졌으며,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히려 사랑은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 책이나 영화에서 볼 법한 어떤 자본주의적 재료로서 작용한다. 시대에 따라 변한 사랑을 통해 우리네 이야기를 돌아보는 점에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섰다.

사랑의 본질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한 성찰과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고착되어 있었다는 점에 나는 놀랐다. 사랑은 고정되고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녹아 흘러가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사랑은 생각보다 복잡한 현상이고, 깊이 캐들어 갈수록 불가해한 것이다. 
p.34

   ㅁ 저자의 말처럼 사랑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부질 없는 짓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사랑을 통한 우리네 이야기를 이해하는 걸 은밀하게 제시한다. 그렇게 '혼자'라는 챕터부터 시작되어, 타인, 광기, 기다림, 결혼 등 우리가 사랑 뿐만 아니라 관계에서 생기는 부분까지 포괄할 수 있는 주제다.(물론 결혼은 좀 다르지만...) 그리고 마지막은 바로, 이야기.

사랑은 이야기를 낳는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고,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 사랑은 저마다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품는다. 
p.210

   ㅁ 결국 사랑은 이야기란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나 보다. 무수한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나 앞에서 말한 챕터들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은 이야기로 수렴해가는 [사랑에 대하여]란 책은 사랑에 대한 사유를 통한 우리네 이야기를 섬세하고도 쏘는 듯한 말투로 전개해 나갔다. 사랑을 어떻게 이해하려는 시도는 의미가 없고 그냥 사랑 그 자체로서 무수한 이야기가 전부인 셈이다. 우리는 그렇게 매번 이야기를 만든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할 자신만 아는 그런 이야기. 그게 사랑임은 책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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