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을 깎아 주거나 책가방을 챙겨주고 할 때처럼 일상에서조차 아이와 마주하면 나는 자주 아버지를 느끼게 되고 그 순간 나의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내게 남아 있어서 그렇다.
그와 같은 아버지로서의 자상함 이외에도 페티 페이지의 ‘I went to your wedding’을 함께 부르고,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해서 나에게 처음으로 얘기해주신 ‘멋진 분’이기도 했다. 스케이트와 테니스도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나의 아버지도 내게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당신 자신으로서는 최선을 다하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버지가 되어보니 그 마음을 얼마만큼은 알 것 같다.
내게서 자신의 꿈을 엿본 것처럼 아이가 ‘아빠처럼~’이라는 말을 가끔 한다. 아직까지는 아이들에게 실망스럽게 비치지는 않는 모양이다. 내 서재에는 아이들이 그려준 그림이 초상화처럼 여러 장 걸려있는데 볼 때마다 책임감이 무거워진다.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것이 어쩐지 두렵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모든 아버지들이 그렇겠지만 나의 아버지 또한 전적으로 좋은 모습만 보여주신 것은 아니었다. 내가 아버지를 이해함으로써 그것을 잊었을 뿐이다.
나도 그 밖의 것은 다 잊혀지고 나의 아버지처럼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기억되고 싶다.
<황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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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모의 땅과 어두운 하늘 사이에서 힘들게 일하며 사는 사람은 하늘과 빵이 가볍게 느껴지는 다른 땅을 꿈꾸게 된다. 그는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그러나 빛과 둥근 구릉들로 진종일 마음이 흡족해진 사람들은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 그들이 꿈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상상 속의 타 고장뿐이다. 이리하여 북쪽 사람들은 지중해 기슭으로, 혹은 빛의 사막 속으로 도망쳐 오지만, 빛의 고장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속으로 밖에 또 어디로 도망칠 수 있겠는가?
(…)
짐승은 즐기다가 죽고 인간은 경이에 넘치다가 죽는다.
끝내 이르게 되는 항구는 어디일까?..

쟝 그르니에의 <섬> 중에서
<섬>에 부치는 알베르 까뮈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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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을 청춘처럼 흐르다 아무도 모르게 떨어지는 별처럼
누구에게나 영원도 있고 순간도 있는 것이다.

너에게 남아 있는 기억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아주 오래된 습관이리라.
빛은 어디서나 내게로 오고 있지만
서 있는 곳에서는 방향도 없다.
햇빛 속으로 사라지는 것들은 아주 잃어버려도 그만인 그림자 같은 것,
나의 모든 각오들이 가난해졌을 뿐이다.

이제 믿음 속에서도 해가 지는 그 차이를 이해한다.
멀어지는 너의 모습 뒤로 저녁 별이 뜨면
길은 더 분명하게 보일 것이다.

<황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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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자전거

안도현 


너무 오랫동안 타고 다녀서
핸들이며 몸체며 페달이 온통 녹슨 내 자전거
혼자 힘으로는 땅에 버티고 설 수가 없어
담벽에 기대어 서 있구나

얼마나 많은 길을 바퀴에 감고 다녔느냐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많이 알수록
삶은 여위어가는 것인가, 나는 생각한다

자전거야...
자전거야...

왼쪽과 오른쪽으로 세상을 나누며
명쾌하게 달리던 시절을 원망만 해서 쓰겠느냐
왼쪽과 오른쪽 균형을 잘 잡았기에

우리는 오늘, 
여기까지, 
이만큼이라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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