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너희들이 미소짓는 것을 본다, 오, 친구들이여,
아마 너희는 미소지으리라, 내가 땅에 웅크리고 앉아 부채질하고,
불을 피우고 숯 굽는 모습을 보며,
고독하게 꿈꾸며 생각에 잠기는 나의 어린아이 같은 즐거움이
비유로 장식되고 흐뭇하게 가슴 펴는 것을 보며,
너희 다정한 벗들이여, 너희는 알 것이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또 내가 한 줄의 시를 지을 때, 미화하지 않고 다만 고백하고 생각하는 것을, 그 까닭에
너희는 나의 몽상을 받아주고 있다... 나는 잡초와 담벼락사이
그늘에 쪼그리고 앉아 불쏘시개를 비비고,
종이에 불을 붙여 타오르게 하며 몇 개의 지푸라기나
잎사귀를 간간이 그 위에 뿌린다. 그런 다음 좀 더 많이 처음에는
마른 것들을.
마지막에는 녹색 잎사귀까지 다 던져 넣는다.
나중에 가을이 되면, 나는 들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사랑하리라.
이담에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질 때 폭풍이 나뭇가지들을 날라오겠지만
지금은 덥기도 하고 나무도 부족해서
나는 조심스레 불꽃을 덮어 가며 모닥불을 피우려 애쓴다.
조용히 연기를 피우며 숯 굽는 가마를 돌보듯 한다.
모닥불은 반나절이나 온종일, 조용히 계속 불꽃을 내며 타오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숯 굽는 사람'이라고도 부른다.
(...)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는 아무도 더 이상 가만히 앉아서
흙에 불을 붙여 태우고 있을 시간이 없다.
누가 그에게 보수를 주겠는가?
그러나 시인인 나는 자제와 어쩌면 희생으로 그 값을 지불한다.
그렇게 하도록 신은 내게 허용했다.
지금 우리들의 시대에 살도록, 그뿐만 아니라
종종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공간 속에서 시간을 느끼지 않고 숨쉬도록.
한때 그렇게 하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었다.
무아지경이거나 신성한 광기로 여겨졌다.
오늘날 그것은 아무 가치도 없다. 오늘날엔 시간이 너무도 값비싸 보여
시간을 경시하는 것은 악덕처럼 여겨진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것을 전문가들은 '내향성'이라 부른다.
그러면서 마치 나약한 자의 행동쯤으로 여긴다.
인생의 의무를 저버리고 꿈속에서 자기 만족에 취해 자신을 버린 채
어른이라면 누구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못된 유희를 하며 지내는 자의 행동쯤으로 여긴다.
이처럼 사람들에 의해 시대에 따라서 재산의 가치는 달라진다.
그러니 누구나 자신의 것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다시 흙으로 돌아가자!
헤르만 헤세의 시 <정원에서 보낸 시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