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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le sports fishing off the Florida coast, a tourist capsized his boat.

He could swim, but his fear of alligators kept him clinging to
the overturned craft.

Spotting an old beachcomber standing on the shore,
the tourist shouted, "Are there any gators around here?"

"No," the man hollered back, "They ain't been around for years!"

Feeling safe, the tourist started swimming leisurely toward the shore.

About halfway there he asked the guy, "How'd you get rid of them?"

"We didn't do anything," the old man said.


"The sharks got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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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앞바다에서 낚시를 즐기던 관광객의 보트가 뒤집혔다.

그는 수영을 할 수 있었지만 악어가 무서워서 보트에 매달려 있었다.

해변에서 표류물을 수집하고 있는 노인을 발견하자


그는 "이 근처에 혹시 악어가 있나요?"하고 큰 소리로 물었다.

"악어는 없어진 지가 오래요"라는 대답이었다.

이제 안전하구나 생각한 관광객은 느긋하게 해변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해변으로 반쯤 접근했을 때 그는 "그런데 어떻게 악어들을 없앴어요?"하고 물었다.

"우리가 악어를 어떻게 한게 아니라구요. 상어가 악어를 다 잡아먹었으니까"라고


노인은 대답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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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라고 했다.
성형수술을 하는 이유가 기쁨과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기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얼굴이란 어차피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하는 것이고, 거울 앞에 서면 누구나 흔들리게 마련이다. 자기 얼굴에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아름다운 것이 행복해지는 하나의 조건이라면, 행복한 사람은 아름다울 필요가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말 그대로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 틀림없다. 또한 영원히 아름다움을 간직하기도 힘들다는 말도 어떤 사람에게는 불편한 소리로 들릴 것이다.
5월 24일자 중앙일보에 '당신은 천사를 본 적이 있나요!' 라는 사진이 실렸다. 저작권 문제가 있어 아쉽지만 한 번 꼭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그 사진 속의 아름다운 천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행복해진다.
<황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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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인의 말인데, 꽃과 새와 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정결한 기쁨을 우리에게 베풀어 준다는 거야. 그러나 그 꽃은 누굴 위해 핀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기쁨과 생명의 힘으로 피어난 것이래. 숲 속의 새들도 자기의 자유스런 마음에서 지저귀고 밤하늘의 별들도 스스로 뿜어지는 자기 빛을 우리 마음에 던질 뿐이란 거야. 그들은 우리 인간을 위한 활동으로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안에 이미 잉태된 큰 힘의 뜻을 받들어 넘치는 기쁨 속에 피고 지저귀고 빛나는 것이래.

그러니까 아름다움은 안에서 번져 나오는 거다. 맑고 투명한 얼이 안에서 밖으로 번져 나와야 한단 말이다. 사람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어째서 그럴까. 서로 뒤바뀌지 않게 알아 볼 수 있도록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그렇게 빚어 놓은 것일까? 아닐 거야. 아니고 말고. 그건 저마다 하는 짓이 달라서 그런 거지. 얼굴이란 말의 근원이 얼의 꼴에서 나왔다고 한다면, 한 사람의 얼굴 모습은 곧 그 사람의 영혼의 모습일거다. 아름다운 얼굴은 지금까지 아름다운 행위를 통해 아름답게 얼을 가꾸어와서 그럴거고 추한 얼굴은 추한 행위만을 쌓아왔기 때문에 그럴거야. 그렇다면 아름답고 추한 것은 나 아닌 누가 그렇게 만들어놓은 게 아니라, 내 스스로의 행위에 의해 그러한 꼴을 덮어썼다는 것이지.

어이, 욕지거리를 잘하는 미인을 상상할 수 있겠어? 그건 결코 미인이 아니야. 그리고 속이 빈 미인을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러기 때문에 아름다움은 또한 슬기로움과 서로 이어져야 해. 슬기로움은 우연하게 얻어지는 게 아니거든. 순수한 집중을 통해 자기 안에 지닌 빛이 발하는 거지.

법정의 <무소유> ‘아름다움 - 낯 모르는 누이들에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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