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집은 내가 되고 - 나를 숨 쉬게 하는 집
슛뚜 지음 / 상상출판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과의 관계에서뿐 아니라 집과 그 집에 사는 사람의

관계에서도 상호작용은 중요하다.


내가 집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집은 정말 내가 정의 내린 공간이 되어버린다.

p.10

이 책 <가끔 집은 내가 되고>는 그의 공간의 가치를 기록한 에세이이다. 그의 유년 시절의 공간부터 자취를 해서 자기만의 공간이 생기고 나서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지나온 공간과 자리를 돌아보고, 또 자신만의 취향으로 공간을 구성하며 자아를 확립하는 저자를 만날 수 있다. 집이란 무엇일까, 나의 집이란 내가 생활하고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다. 누구보다 둔하지만, 자는 환경은 예민한 편이라 내방이 아닌 곳에서는 쉽게 잠들지도 깊게 잠들지도 못하는 편이다. 집의 모든 공간이 나에게 편한 공간은 아닌가 보다. 또한 인테리어 디자인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내방을 꾸미지 못한다. 내 방에 있는 가구들은 온전히 나와 20년 이상을 함께 해오던 것들이다. 서랍의 바퀴가 부서지더라도 버리지 못하는 그런 친구가 되어버린 가구들과 언제쯤 헤어질 수 있을까, 가구를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엄마의 잔소리가 크다. 어서 독립해서 나가서 가구를 구하라고 멀쩡한 가구를 왜 버리냐고 해서 20년 동안 동고동락하고 있는 중이다. 어렸을 때부터 동생과 자주 티격태격을 해서일까 중학교 저학년 때 각자의 방을 갖게 되었다. 유난히 집순이인 나는 집에서 쉬는 날이 되면 방 밖으로 1m 이상도 나가지 않는다. 누가 일주일 동안 방에서 나가지 않고 생활하라고 하면 한 달이고 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나는 집에만 오면 방순이가 된다. 내방은 보기에는 정신없어 보이지만 나만의 규칙을 담고 있다. 친구들 눈에는 내방은 도서관이자 문구점 같은 비주얼이라고 말한다. 내가 어떤 취미가 있는지,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지 내방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처럼 저자 슛 뜨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 또한 집 또는 방과 같은 우리가 머무르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그의 정적이고 섬세한 글들이 이 책에 좀 더 빠져들게 만든다. 집, 과 방이라는 공간에 대한 일을 하다 보니 이 책이 더 재밌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뭔가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와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 이케아와 다이소에 대한 이야기도 초반 부분에 나와서 그럴 수도 있다. 저자 슛 뜨는 가정환경 때문에 원래의 공간에서 나와 자기만의 공간을 찾아갔지만, 그리고 나 또한 나 자신만의 공간이 있으면 어떨까 기대도 되지만 상상이 잘 안 가는 것 같다. 앞으로 살게 될 집이 생긴다면 어떻게 꾸미고 공간을 어떻게 나눌지, 어떤 공간으로 사용하고 어떤 분위기로 만들어낼지 머릿속에 이미 몇 가지의 설계도면이 그려지지만 잘 상상은 안 가는 것 같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가구가 고장 나거나 하면 척척 새것으로 바꾸시곤 했는데 지금은 일을 하면서 가구의 원가를 들을 때마다 놀란다. 이거 하나를 사려면 얼마를 모아야 하고 몇 개월 할부를 해야 할까라고 말이다.

이 책에서도 사회 초년기의 우당탕탕 첫 자취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러한 소재가 재밌었지만, 내가 만약 저자였다면 정말 하루하루가 요란스러운 어쩌다 보니 살아낸 하루였을 것 같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를 들으며 음식을 하는 행위는 나에게 일종의 원동력을 줬고, 혼자 사는 사람을 묵묵히 지탱해 주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자취라는 단어부터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생활함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당연한 건가 싶기도 했다.

p.43

욕심이 생겼다. 이렇게 예쁜 동네에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공원에서 베베와 산책을 하고, 여름엔 집 앞에 강처럼 흐르는 바닷물을 보며 벤치에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마시고,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매일 저녁 노란 알전구가 가득한 골목을 지나 집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며칠 전까지는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도시인데 하루아침에 마음을 빼앗기다니.

p.55

생각해 보면 나는 공간이든 물건이든 간에 정을 잘 주는 것 같다. 사람에게 정을 퍼주는 것도 모자라 공간과 물건이라니.

이 문장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언젠간 저렇게 마음을 뺏기게 되는 공간이 나에게 생길 수 있을까, 습관적으로 오늘의 집을 자주 보는데 그곳에서는 자기만의 공간을 자신과 잘 어울리게 꾸미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저분들은 인테리어를 전공하지도 않았을 텐데 감각 있고 개성 있는 공간 구성을 볼 때면 내가 시대에 너무 뒤처져 있는 건가 싶기도 할 때가 있다. 책의 중간중간엔 이 책의 저자 슛뜨가 지내고 있는 공간의 사진들이 나온다.

공간만 보면 안정적이고, 따뜻한 기분이 든다. 수많은 수행 착오를 겪고 만들어낸 공간인 것이 보인다. 그의 일상 이야기와 그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문장들이다.

'내 집 마련'이라는 것은 단순히 내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것, 혹은 더 이상 월세가 오를까 걱정하거나 늘 이사를 염두에 두고 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를 넘어 집안일 중에서 설거지만큼은 끔찍이 싫어하는 내가 드디어 주방에 식기세척기를 둘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p.102

하물며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채 일상에서 지나치는 디자인도 이렇게나 각자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데, 우리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에서의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p.117

저자가 처음 인테리어를 하는 것 보았을 때가 엄마가 하는 인테리어라고 하는데, 생각해 보면 나는 내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일을 하고 있는데 지금 사는 이 집에 이사 왔을 때 인테리어를 조금 도와달라고 하신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내 의견을 모두 묵살된 채 이상한 걸레받이 마감과 화장실 줄눈을 보고 경악을 했었지만 생각해 보면 이 집에 제일 오래 머무르는 사람이 디자인하는 것이 제일 맞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마무리하고 나면 저자가 그동안 머물렀던 공간에 대한 브이로그를 담은 부분들이 나온다. 큐알코드를 인식하면 그의 영상을 바로 볼 수 있다. 그녀의 집 인테리어 질문과 대답을 해주는 부분부터 공사 과정기록까지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나도 빨리 자취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의 이야기였지만, 그 속에 담긴 저자의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뜻깊었던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으로만 보거나 영상으로만 봐왔었는데 이렇게 책으로 만나니 신기했고, 두고두고 다시 펼쳐 읽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출판사' 상상출판'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직접 읽고 쓴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