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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은유하는 순간들
김윤성 지음 / 푸른향기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저자 김윤성은 괜찮은 삶인 것처럼 보이지만, 절뚝이는 삶 속에서 낡은 지도 한 장을 가지고 직장에 다니는 틈틈이 세계여행을 했다.
20년 여행 고수가 겪은 22편의 아름다운 세계여행이야기를 담았다. 여행을 하면서 예기치 못하게 만나는 순간들과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행복들을 이야기한다. 아름다운 여행지의 사진들과 마음이 따뜻해지는 에피소드들이 숨어있다.
여행은 어쨌든 지치고 바쁜 일상 속에서 여유와 힐링을 준다. 바쁜 사회생활 중간중간 휴가를 모아서 다녀오는 여행은 참으로 달고 좋다.
회사 신입일 때는 휴가를 덥석 쓸 수 없어서 그래도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국내여행을 많이 다녀왔었다. 작년부터 이번 휴가에는 해외여행을 다녀와야지 마음을 먹었는데 코로나19가 생겨나버렸다. 동네를 벗어나 매일 지나다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을 다녀오는 것 또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확진자가 줄어들고,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조심히 다녀온 몇 군데의 여행지가 그래도 지친 이 시대에 작은 휴식처를 줄 수 있었다.
요즘 20,30대는 여행에 열광하는 세대이다. 욜로가 대세인 이유도 있지만, 다른 세대들보다 마음에 문제에 천작하고 그 해결책으로 여행을 1순위로 두고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나는 20대 30대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사람이다. 예전에는 잘 생각하지 않았던 욜로라는 생활이 지금은 이렇게 바쁘고 지치는 일상에서 욜로라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면 재미없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시대가 오고 나서는 좀 더 욜로 하자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왜냐하면 정말 이제 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할 수도 없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은 위험을 무릅쓰고 돌아다닌 다거나,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행복보다는 마음가짐을 욜로로 생각하려고 하고 있다.
<여행이 은유하는 순간들>은 아름다운 여행지, 마음 따뜻해지는 에피소드, 인문학적 단상 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 있다.
아름다운 여행지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여행지를 담은 사진들도 등장하는데, 당장이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스웨덴, 아이슬란드, 스위스,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영국, 스코틀랜드, 독일, 이태리, 볼리비아, 몽골, 일본, 캐나다 등 총 22가지 에피소드들이 있다. 국어사전에서 은유라는 단어는 '사물의 본뜻을 숨기고 주로 보조관념들만 간단하게 제시하는, 직유보다 한 단계 발전된 비유법'이라고 소개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나 움직임들도 암시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데 '내 마음은 호수요' 따위같이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인 <여행이 은유하는 순간들>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여행이라는 것 자체 속에 숨겨진 아름다운 순간들과 에피소드들을 잔잔하고 은은하고 따뜻하게 표현해낸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작가의 글의 분위기를 함축적으로 담은 제목이었다고 느꼈다. 저자는 창원 시청에서 오래 근무한 공무원인데, 틈틈이 근무 중에 세계여행을 다녀왔다는 것이 멋있다고 느꼈다.
주변에는 직장 생활도 열심히 하고, 여행도 열심히 다닌 친구들을 볼 수 있는데 전에는 저렇게 지내면 돈은 언제 모아?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참 멋지게 사는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여행 에세이를 책을 봤을 때는 그냥 막연하게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 책은 뭔가 여행의 추억과 기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기도 하고,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는 사람 냄새와 정이 가득 담긴 어딘가 애틋해지는 여행 에세이인 것 같다. 은유적이고 감성적인 문체들이 어쩌면 산문 같기도 하고 시 같기도 하다. 어쨌든 무언가 <여행이 은유하는 순간들> 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중간중간 저자가 여행이야기를 하면서 추천해 주는 도서들도 읽고 싶어진다.
결론적으로는 여행을 하고 싶다. 너무너무 여행이 그립고 평범한 몇 년 전의 추억들이 그리워지는 시간이었다.
어떤 친절이 여행에 필요한지 구별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전적으로 여행자인 나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어떤 친절을 선택하든, 여행길에서 만났던 낯선 사람들의 친절은 늘 여행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p.45
'오늘 뭐 했어.'
'오늘 어디 갔다 왔어.'
이런 문장을 소셜 미디어에 쓰는 날이 특별한 날이다. 그 문장 하나를 위해 도시의 사람들은 어쩌면 특별한 느긋함을 잃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가 사는 도시는 느낌을 버리고 사건들만 남게 되었다.
p.65
호수의 광막함은 바다의 광막함과는 달랐다. 바다의 것은 열림이지만, 호수의 것은 막힘이었다. 호수의 표면을 비추는 숨죽인 달빛, 검은 덩어리 같은 섬들 사이로 어디 한군데 출구도 보이지 않았다. 문득 이 밤에도 자기만의 출구를 찾아 낡은 영어책과 씨름하고 있을 호세가 떠올라 조금은 숨쉬기 편해졌다.
p.140
현실에서는 모든 것이 직설이다. 일상을 살아내려면 직설은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일상의 직설은 많은 고통을 동반한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제대로 살고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
p.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