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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구하겠습니다! - 1퍼센트의 희망을 찾아가는 어느 소방관의 이야기
조이상 지음 / 푸른향기 / 2020년 5월
평점 :

5년차 소방관의 이야기를 담은 <오늘도 구하겠습니다!>
무언가에 집중하기 힘든 요즘이지만 오랜만에 기다리던 책이기도 했고, 표면상으로만 알고 있는 직업군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되는 흥미로운 책이라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읽는 동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방관의 기본 업무인 화재진압, 구조, 구급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그동안 모르고 지나갔던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던 소방관들의 고되고 힘든 순간들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어서 좋은 책이었다.
돌이켜보면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사람들을 구하고 도와주고 불을 끄는, 그저 당연하게 내 곁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당연했으므로 당연히 국가직인 줄 알았던 소방공무원이 지방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그동안의 당연했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후로는 멀리서 소방차 사이렌이 들리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오늘도 모두가 무사하기를 기도했고 길을 걷다 소방차를 만나면 소방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서 응원을 하기도 했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구하는 일에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다는 것을 너무 뒤늦게 알아버린 나의 죄책감을 그렇게라도 조금 덜어내고 싶었다.
2020년 4월 1일 소방공무원은 드디어 국가직으로 전환되어 국가재난의 신속한 대응이라던가 소방 서비스의 격차 해소 등이 좋아졌지만, 소방관의 처우나 화재에 대한 사람들의 경각심은 여전히 열악하다고 한다. 국가직이 되면 내가 원하던. 일명 소방관이 짱인 세상(?)이 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구나, 여전히 갈 길이 멀구나 생각하니 오히려 더 많은 응원과 기도를 전하게 됐다.
책을 읽다가 생각난 에피소드인데, 아침에 부모님이 출근을 하시고 나는 여느때와 같이 느긋하게 일어나서 주방문을 열었는데 글쎄, 가스렌지 파란 불꽃 위에 작은 주전자가 빨갛게 열이 받아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깜짝 놀라서 일단 불을 끄고 빨갛게 열받은 주전자를 찬물에 담궜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게 느껴질 정도로 놀라서 그대로 주저앉아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엄마한테 전화했다. 자고 있는데 불을 켜두고 가면 어떻게 하냐고 화를 냈다. 엄마 역시 미안하다며 불나기 전에 일어나서 다행이라며 농담을 던졌지만 전화 너머로도 놀란 기색이 영력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엄마랑 아빠는 커피를 한 잔 하고 출근을 하시는 루틴을 가지고 계셨는데 그날 역시 커피를 마시려고 물을 올려두었다가 주방 문을 닫아두고 깜빡 하신거다. 그 뒤로 우리집은 물이 끓으면 알아서 스위치가 꺼지는 전기 포트를 사용하게 됐고, 꺼지지 않은 도시가스의 위험에서 조금 벗어나게 됐다.
사고가 나고 싶어서 나는 경우보다 모두의 부주의에서 사고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 부주의함이 사고로 이어졌을 때, 얼마나 빠르게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하느냐에 따라 사고로 마무리 될 수도, 재난이 될 수도 있다. 내가 평소에 CPR(심폐소생술)을 영상으로 꾸준히 익히는 이유 역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줘야할 상황이 왔을 때 그곳에서 내가 얼마나 배운 것을 정확하게 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기로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방관이라고 영화 속 히어로처럼 원초적인 힘을 이용해 모든 사람을 구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현장에 얼마나 유능한 구성원이 있었느냐에 따라 구조의 확률도 높아진다고 했다. 그 유능한 구성원이 내가 되어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어 잠시 책을 덮고 다시 한 번 CPR 영상을 열심히 보며 연습했다.
사실 다른 직업군(의사, 경찰과 같은 직업)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같은 곳에서 많이 선택되어 생소한 직업군을 이해하는데 일말의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에 비하면 '소방관'이라는 직업은 쉽게 접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막연하게 상상하고 그 상상한 범위 안에서 공감하는 정도의 이해가 전부였는데, 이 책을 통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느낀 바가 많았다. 소방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나처럼 직업의 이해도가 떨어지는 사람들에게도, 유능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추천을 하고 싶다.
소방관이 뭐 하는 직업이냐고 물으면 나는 대답한다.
"손을 잡아주는 일이에요."
내가 소방관이 된 후 한 일은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 P18
‘긴급상황‘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매우 급히 수습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나오고, 영여사전의 뜻을 빌려보면 ‘예상치 못한 사건이나, 위험한 상황, 특히 사고가 갑자기 발생하여 이를 처리하기 위해 신속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표현한다.
긴급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간다. 그런데 그 길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놓여있다. 내가 높이 뛰어서 넘어갈 수 있는 장애물도 있지만, 너무 높아서 넘어갈 수 없는 장애물도 있다. 그것은 교통상황, 불법주차, 고장 난 옥내 소화전 펌프, 소화전에 주정차된 차량 등 다양하다. 어느 국가에서는 그 장애물을 손으로 밀고 넘어가는데, 대한민국은 장애물이 다칠까봐 돌아서 가야 한다. 왜 장애물이 다칠까봐 염려해야 하는가? 장애물이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나라를 과연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까? - P34
소방관이 출동하는 현장은 불이 나고 사람이 다치는 절체절명의 순간들이다. 위기 상황에서 주위 사람의 언행, 태도, 배려심을 유심히 보면 그 사람의 바닥을 알 수 있다. - P70
아이러니한 것은 결코 안전할 수 없는 몇 사람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의 안전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내가 누리고 있는 편안함과 안녕은 100% 내가 노력해서 된 것이 아니다. - P77
비바람을 맞았다고 식물은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당신은 식물보다 강한 존재다. 당신이 가진 그 강렬한 눈빛처럼 끈질기게, 보란 듯이 살았으면 좋겠다. - P85
현명한 사람은 훈련을 실전으로 여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훈련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사람이다. - P100
유능한 구성원은 촛불과도 같다. 그 한 사람이 들어오면 그 주변은 밝아진다. 그는 좋은 시스템을 만들려고 건의하고, 뛰어다니며, 소통하고, 때로는 뜻대로 되지 않아 싸움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촛불 때문에 주변이 환해진다는 것이다. - P114
긴급 상황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눈‘이다.
살려 달라는 강아지의 절박한 눈, 다친 사람의 고통스러운 눈, 힘들어 보이는 동료의 초점 없는 눈... 모든 감정은 눈으로 집결되는 것 같다. 구조의 우선순위는 당연히 사람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이지만, 동물은 말을 못하기 때문에 그 간절한 눈빛을 보면 도와주지 않을 수가 없다. - P148
"이상아, 일할 때 소신과 고집을 구분해야 돼. 소신은 있어야 하는데, 고집은 빨리 접는 것이 좋아! 지금 네가 우기는 것은 고집이야!"
‘소신‘의 사전적 정의는 ‘생각하는 것이 확실하다고 믿고 있음.‘이고, ‘고집‘은 ‘자기 의견이나 생각을 고치거나 바꾸지 않고 우기는 것‘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소신은 근거나 원칙이 견고하지 않으면 바꿀 수 있는 유연함이 있다는 것이다. 소신은 유연하게 장애물을 뚫고 미래로 나아가지만 고집은 언젠가는 나에게 돌아온다. 과거에 내가 일할 때 고집들이 오늘의 보호자와 환자에 빙의되어 부메랑처럼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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