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에게...

네 무사 전역과 복학을 축하한다. 새학기 준비하는 네 모습을 보며 나도 좀 더 신발끈 질끈 묶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우리는 서로 각자의 전공을 침범(?)하며 외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네가 사학과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그래도 청일전쟁 관련한 과제물을 작성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네 모습을 기억하면 역시 내 둘레에 흔치 않는 사학도라는 걸 실감한다. 내가 너를 위해 골라본 책은 <춘추좌전(春秋左傳)>이다.


네게 <춘추>에 대한 설명을 한다는 게 좀 우습지만 나도 중국사에는 적잖은 관심을 두고 있으니 좀 썰(?)을 풀어볼게. 후한시대 역사가 반고(班固)는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서 춘추의 경우 그 전(傳)이 총 23가(家) 948편에 달한다고 정리했지. 23개의 학파에서 춘추 해석서를 948편이나 내놓았다니 춘추의 인기를 대단했던 모양이야. 사실 여기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우리가 춘추 본문이라고 부르는 것은 1만 6천여 자로 분량이 매우 적고, 그 내용도 소략하다. “So what?”이라는 질문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올법하지. 결국 너도나도 춘추 해설서를 써냈어.


이 수많은 해설서들이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치열한 다툼 끝에 세 종류가 명맥을 유지했어. 그 영광의 얼굴들이 바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과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이야. 세 경전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가 삼국시대 이후에 춘추좌씨전(이하 좌전)이 춘추학을 제패했지. 너도 잘 알다시피 삼국지에서 촉한의 관우가 좌전을 좋아해 전장에서도 좌전을 끼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진 고사고.


그런데 우리나라는 오로지 좌전이 독점적 지위를 누렸어. 우리나라에서 춘추학의 발달이 더뎠던 것은 이러한 독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좌전을 넘어서는 해설서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고나 할까. 이러한 무관심은 광복 이후에도 다를 바 없어 2005년 자유문고에서 곡양전과 곡량전의 역주본을 내놓은 것이 유일하다. 좌전 편향의 우리 풍토를 투덜거리더라도 좌전이 역사적 사실 해설과 실증적 탐구에 열중해서 높은 인기를 얻게 되었음은 인정해야지. 좌전이 가장 읽을 거리가 풍부한 건 분량 면에서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여하간 춘추를 놓고 벌어진 현란한 논쟁을 바라보며 춘추시대 여러 나라의 역사서 가운데 유일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노나라의 역사를 경전으로 승격시켜 아낄 줄 알았던 중국인들의 문화의식을 배워야할 듯싶어. 우리의 역사가 간략하다고 한탄하기 전에 유득공이 <발해고(渤海考)>를 엮는 심정으로 매달렸다면 어땠을까. 만약 춘추를 익히는 정성의 반의반만이라도 삼국사기를 위시한 우리 사서들에 대한 주해를 달았다면 어찌 동방에 경전 몇 개쯤 나오지 않았을까 멋대로 생각해본다.


우리나라 과거시험에서 좌전을 단골 시험 문제로 출제한 것은 익히 전해진 사실이잖아. 서로 춘추대의(春秋大義)를 주창하며 자신의 일을 합리화했고. 약체 중의 약체인 노나라의 역사를 배우려고 우리 선조들이 하얗게 지새운 밤이 그 얼마나 많은가. 이황이 남긴 도서 가운데 주자의 저작과 경전 등 중국서적은 159종인데 조선의 역사, 지리 관련 서적은 1/3 수준인 55종이라고 해. 이이는 <기자실기(箕子實記)>를 지어 중국에서도 전설상 인물인 기자가 조선으로 왔다는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을 정성껏(!) 서술하기도 했고. 이러한 모화사상이 17세기 이후 조선 중화주의를 낳는 기초가 되었다지만 마냥 달가운 일은 아니지. 오늘날의 잣대로 선현들에게 험담을 늘어놓겠다는 뜻은 아니야. 하지만 우리 역사에 해설을 붙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투정을 좀 부려보는 건 뒷사람의 특권일지도 모르지.


중국 대륙을 차지했던 북방 유목민족들이 하나둘 중국화(中國化)하는 와중에도 한국은 아름다운 예외였어. 거의 모든 지배계급이 중국화를 위해 안간힘을 썼는데도 끝내 중국과는 별개의 주체성을 건사할 수 있었던 것은 경이로워.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한 번 탐구해볼 만한 화두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지배층의 중국화 열망을 막아낸 것은 힘없는 백성의 보이지 않는 저항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제 자발적 복종의 시대는 지난 만큼 민초들의 정신을 이어 받아 이 땅에 켜켜이 쌓인 지혜를 정리하고 공유하는 건 우리의 몫이겠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같은 빼어난 기록문화가 조선 이전의 역사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아쉬워. 사기열전의 그 화려한 기록들을 보면서 군침을 흘렸듯이 춘추를 질리지도 않고 잘 우려먹는 중국인들의 은근함에 새삼 부끄럽다. 우리 춘추좌전을 함께 나눠 읽으며 우리가 배워야할 점을 찾아보자. 중국의 고구려사 침탈에 분개하기는 쉽지만, 청나라 건륭제 때 사고전서(四庫全書)를 발간한 그 치열함을 배우기는 어렵지. 다가 올 한중일 역사 전쟁에 의연히 맞설 수 있는 방책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을 듯싶어.


좌전에 나오는 구절 중에 문공 3년조 기록인 제하분주(濟河焚舟)을 네게 건네고 싶다. 강을 건넌 다음 배를 불태워버렸다는 말로 배수진과 비슷한 뜻이지. 우리 수험 생활에 필요한 문구다. 잡설이 길었고 뭐든 열심히 읽고 궁리하자.

좌전의 주요 고사를 뽑아 만든 명구집이야. 맛보기로 읽거나 입가심으로 읽으면 좋겠어.

 

 

 

 

동양고전을 부지런히 번역하는 자유문고에서 펴낸 판본이야. 원문에 대한 역주가 비교적 풍부해서 원문에 관심이 많은 경우 추천할 만해.

 

 

 

 

편집디자인이 좋아서 가독성이 뛰어난 판본이야. 특히 권두 해제에는 춘추학에 대한 상세한 해석이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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