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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준
고종석 지음 / 새움 / 2010년 8월
평점 :
『독고준』을 읽다. 소설은 독고준의 일기와 그에 대한 감상이 주된 내용이라 고종석 선생님의 전작인 『히스토리아』나 『발자국』의 기록정신을 연상해봄직하다. 소설 속 일기의 선별은 앞의 두 책보다 좀 더 자의적(!)이다. 그 덕분에 회색인의 심미안을 엿볼 수 있다(독고준의 펜을 빌린 저자의 눈길이겠지만). 독고준의 일기는 1960년 4.19 혁명부터 2007년 대통령 선거까지 반백년의 기록이다. 독고준의 손자뻘인 나로서는 아무래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사이의 일기에 손이 머문다. 고려 시대 같은 아주 먼 과거보다 1970년대처럼 조금 지난 이야기가 오히려 더 멀게 느껴지다니 재미난 일이다. 한국 현대사 인물들에 대한 정서적 거리감 탓만은 아닐 듯하고, 개관사정(蓋棺事定)을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한 모양이다.
독고준의 따님인 독고원은 아버지의 견해에 동조하거나 첨언하다가도 이따금 불편해한다. 어쩌면 저자의 복합적인 생각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생각이 있으면 저런 생각이 있게 마련이라는 담담한 상식을 말이다. 소설적 허구는 참신한 문제의식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기존의 문제의식을 극적으로 포장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 소설은 후자의 성격이 좀 더 강하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헛갈리는 것이 매력이다. 창의성과 과장성은 사회의 다수파(가 만든 법과 규범)의 시각과 어긋나기도 한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분 중에 회색인이 많은 이유일 테다.
독고준의 단정(斷定)하지 않는 단정(端正)함을 배우고 싶다. 시중(市中)에서 시중(時中)을 잡아보고 싶다. 나는 사람의 (노력을 포함한) 재주가 불공평하다는 걸 실감한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사람 가치의 우열을 따지는 건 매우 어렵고 조심스런 문제다. ‘독고준을 넘어서는’이란 목표도 좋지만 ‘독고준과 다른’ 매력을 만들어보는 것도 꽤 도전해볼 만한 일이 아닐까. 설령 차별화(?)에 실패한다고 해도 나쁠 건 없다. 세상에는 지식 도매상보다는 지식 소매상이 많고, 지식 소매상보다는 지식 유통상이, 그보다는 지식 소비자가 더 많기 마련이다. 꽤 괜찮은 유통상이나 소비자가 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무게가 많이 낮아질 거 같지는 않다.
나는 삶은 한 번 뿐이라고 믿는다. 일전에 고 선생님께서 언급하시기도 하셨던 “한 개인의 죽음은 그 개인에게 우주의 소멸이다”라는 명제를 지지한다. 그래서 한 번 밖에 없는 생을 가능한 한 옳고 아름답게, 착하고 재미나게 살고 싶다. 안연은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노력하는 자라면 또한 그와 같아질 것이다(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라고 말씀하셨다. 순임금이나 자신이나 모두 똑같은 사람인데 한 사람은 성인이 되고, 안연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자책의 뜻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이 위대한 문장을 변용해본다.
“독고준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회의하는 자라면 또한 그와 달라질 것이다.”
2010. 8. 19. 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