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신화
손홍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카프카, 조세희, 마르께스, 천운영, 김기덕, 로트렉...

나는 독서량이 일천한 주제에, 어떤 텍스트를 읽을 때, 다른 텍스트와 계속해서 연결지어 생각하려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겨우 책 서너권을 읽고, 각 텍스트들을 비교 분석하여 조잡한 레포트를 줄줄이 써내야 했던 '문학'이라는 내 대학시절의 전공 때문에 붙은 버릇일지도 모른다.) 손홍규의 소설집을 한작품 한작품 읽으며 나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 침잠하고자, 혹은 축소되다가 결국은 소멸되고 싶어하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카프카의 "변신"을 생각했다가, 현대 사회가 가족사에 가져온 커다란 비극을 보면서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생각했다가, 마르께스의 "백년동안의 고독"도 생각했다가, 사회 하부계급(좋은 표현은 아닌 듯 하다)에 천착하며 그들의 욕망과 정신세계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볼 때에는 천운영도 생각했다. 천운영은 도시 하부계급을 손홍규는 농촌 하부계급을 그리고 있다는 것, 천운영의 주인공은 파괴하고 손홍규 소설의 주인공은 축소, 소멸하려 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랄까. 좀 더 엉뚱하게는 자신의 영화보다 현실이 훨씬 추악하다고 주장하는 김기덕의 영화도, 추레한 현실 속에서 생활적이면서도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스윽 스윽 스케치 해낸 로트렉의 그림들도 생각이 났다.  그렇다고 해서 손홍규의 소설이 내가 나열한 것들의 잡다한 복합품이라던가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근래 발표되는 한국 단편 소설에서 보기 드물만큼의 독창성과 완성도 지닌 본 이야기의 뜨거운 용광로안에, 위에 열거한 작품들의 매력들을 매력 또한 녹여 품고 있다는 느낌이다.

 

마술적 리얼리즘??

그 중에 마르께스만 가지고 이야기를 조금만 해 볼까?

나는 매우 단순무식한 사람으로, 내가 마르께스를 떠올린 이유는 단순하다.

누군가 마르께스를 가리켜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했던가? 손홍규의 소설에서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뱀과 이야기 하며, 나이를 꺼꾸로 먹는 등의 마술적인 사건들이 일어난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는 12·12가 일어나고, 5·18이 일어난다. 본인도 "마술과 기적보다, 마술 같고 기적 같은 현실! 앞에서 마술과 기적을 조금 흉내냈을 뿐이라는 게 이 소설들의 마지막 주석이다. " 라는 말로 자신의 소설을 설명하고 있다.

마르께스의 소설이 그러하듯 손홍규의 소설에서도 마술적인 현상안에서 그 와중에 다뤄지는 현실이란 '마술적인 사건들' 보다도 훨씬 더 믿기 힘들고, 어렵고, 공포스러운 것들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서사의 초점은 한 사람이나, 가족 등 개인적인 이야기에 맞춰져 있으면서도 정치나 역사적 질곡들이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음을, 그들이 어떻게 영향받고, 상처받고, 때로는 파괴되는 지를 엮어 보여준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도 부엔디아 집안은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그들의 집안도 전쟁과 바나나 리퍼블릭에 의해 영향받는다.)

 

소설의 묘사를 통해 보여주는 현실은 그야말로 '리얼'해서, 얼추 비슷한 시대를 살아왔지만, 내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그 공간을 정말 내가 알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을 줄 정도이다. 그러면서 '현실'을 그리는 소설이 빠지기 쉬운 '촌스러움' '선전성'에 빠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에 있는 마술적 장치들이 그저 '현실'을 멋부려 표현하기 위한 장식이나 눈속임인 것은 절대 아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 우리 모두의 이야기

조셉 캠벨이 우리에게 전래된 각종 신화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인류의 원형적인 이야기들은 결국 삶의 원리와 인간의 정신구조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손홍규가 도입한 마술적 장치들은, 신화(보다는 설화)와 엮이면서 우리의 '무의식'을 건드리고, 개인을 이야기하면서도 우리 모두를 이야기한다. "사람의 신화"에서 차용된 [환웅 설화], "아이는 가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다"에서 차용된 [아기장수 설화], 등은 설화를 소설의 서사를 위한 단순한 도구로써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신화와 설화 속에 축적되고 있는 우리네의 과거와 현재를 읽어내고 재창조하여 다시금 우리에게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쪽 팔린 개인적인 감상을 이야기 해 볼까? 나는 모교 도서관 일반열람실 구석에서 "아이는 가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다"를 읽으면서, 작가의 놀라운 과거 시공간의 복원과 놀라운 유머감각에 혼자 키득 키득 웃음을 참지 못하다가, 소설 말미에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어버렸다. 모든 부모에게 있어 (특히나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간의 간극이 엄청나게 벌어져버린 우리의 근대 이후부터는) 그들의 자식들은 그토록 소중하게 얻은 자식이면서도 자신들과 전혀 다른 종족이었고 - 설화에서는 빠른 성장속도와 겨드랑이의 날개로 상징되는-, 그런 아이의 남다른 면(날개)을 사회 안에서의 생존을 위해 그들의 손으로 제거해야 했으며, 결국 아이는 부모를 떠나 전쟁터(같은 사회)로 향해야 했다.

모든 부모는 대나무에 싹이 트기를 기다리는 아기장수의 부모이며, 모든 자식들은 전쟁터로 떠나 싸워야 하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이제는 돌아가기 어려운 아기장수인 것이다.

한국인의 '무의식'을 건드리고 우리 모두의 현실을 복원하는 그의 소설에 가슴이 먹먹해질 만큼의 감명을 받았다.

 

p.s. 작가의 다음 소설이, 기대된다. 개인적으로 (우리 문학이 아직 가지지 못한) 80-90년대를 그리는 대하드라마를 쓸 수 있는 소설가라 생각된다. (혹은 내 취향에 맞추어 마음대로 기대를 마구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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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6-02-05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았습니다. 한동안 소설을 읽지 않아 시큰둥하다가 이 책을 읽고 싶어서 검색하니 님의 서재글이 제 마음을 잡아끄네요. 잘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