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의 철학
한자경 지음 / 서광사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독일에서 칸트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다시 동국대에서 유식불교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색적인 경력을 가진 철학교수의 책이다. 이러한 경력의 뒷받침으로 불교에 관한 책이면서도 서양철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읽고 이해할만하게 쓴 책이다. 그만큼 불교철학은 아직도 난해하고 소통 안 되는 전문용어에 갇혀있는 게 현실이다.

  유식불교를 기반으로 해서 일심을 설명한 것인데, 책 전편에 서양철학자들, 동양의 다른 철학들이 자유자재로 등장한다. 겹쳐지는 내용들도 있고, 주관적인 느낌이 나는 내용들도 있지만 철학책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진솔한 글들이다. 이 책에서는 단지 철학이 전문기술이라거나 현란한 말장난처럼 다루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삶과 인간이 참으로 궁금해서 여전히 못 견디겠는, 그래서 서양철학으로, 동양철학으로 답이 있을만한 곳은 어디든 달려가는 저자의 진솔한 마음이 담겨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서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는, 그것이야말로 인문학이 계속해서 던져야 할 질문임을 역설하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인식 내용 없는 마음 자체가 파악될 수 있을까? 수행에 의해 마음 자체가 직관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유식불교의 입장이다. 이 과정은 무한히 계속될 것 같은 인식 내용을 죽어라고 뒤쫓아가며 지워내는 과정이다. 이러한 부단한 과정에 의해 직관되는 마음 자체가 바로 일심(一心)이다.  더 이상 ‘생각된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 마음 자체를 잡는 순간은 텅 빈 듯 하면서도 충만한 순간이며, 이 때 잡히는 마음 자체는 초월적 자아이다. 그러나 이 초월적 자아는 단지 개인의 자기동일성을 입증하는 주체로서의 개체적 자아는 아니다. 개체적 자아는 허구이다(無我). 초월적 자아는 오히려 세계와 자아, 나와 남의 경계를 뛰어넘는 것으로서 무한과 절대의 마음인 일심과 일치하며 ‘붕새’에 비유된다.  인간 본성에는 이처럼 유한한 존재이면서도 무한을 인식할 수 있는 초월성과 자유가 있다. 그리고 무명이란 바로 이 일심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각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일심이 스스로 경계지어놓았을 뿐인 자아와 세계를 고착된 것으로서 파악하고 거기에 집착한다. 이것이 我執과 法執이다. 그러나 무명에 의해 자신이 그려놓은 세계와 자기 자신의 허상에 스스로 빠져서 허우적대던 인간이 무명을 무명으로써 볼 때, 눈을 돌려 돌연 무명 자체를 바라볼 때 깨달음이 일어난다. 그리고 바로 이 점, 세계를 인식하던 눈이,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에 인간이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자유로운 해탈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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