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주위를 불안한 눈초리로 둘러보았다. 현재뿐이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제각기 현재 속에 처박힌 가볍고 튼튼한 가구, 즉 탁자며, 침대며, 거울이 달린 양복장과 나 자신이었다. 현재의 진실한 본성이 드러나 있었다. 그것은 현존하는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현재가 아닌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물 속에도, 나의 생각 속에도 없었다. 확실히 오래 전부터 나의 과거가 나에게서 도주해버렸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그것이 나의 능력 범위 밖에 있는 거라고 나는 믿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과거는 은퇴한 것에 불과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존재 양식이었으며 휴가 생태, 비활동 상태였다. 각각은 자신의 역할이 끝났을 때, 스스로 상자 속에 얌전히 들어앉아서 명예로운 사건이 되는 것이다. 그만큼 무(無)를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이제 나는 알았다. 사물이란 순전히 보이는 그대로의 사물인 것이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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