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평전
프랜시스 윈 지음, 정영목 옮김 / 푸른숲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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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단지 말을 내뱉는 것 만으로도 불온한 것이 됐던 공산주의’’마르크스등이 이젠 한물간 유행처럼 촌스러운 단어가 됐다.  자본주의, 공산주의 같은 이데올로기는 구시대적 발상에 지나지 않고 이제 세계는 너나없이 한 가족처럼 국경을 무시한 채 어깨동무를 한다.

마르크스가 부르짖던 피폐한 노동자의 삶 대신 자본가와 별다를 바 없는 풍요로운 삶을 사는 현대의 노동자들은 아예 노동자라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당시의 노동자들과 현재의 근로자들, 회사원들의 삶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전히 자본은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고 오히려 세상이 부유해질수록 자본은 극소수에게 빨려들어간다.  노동자들의 노동시간대비 임금은 과거에 비해 나아지지 않았다.  절대적 가치는 물론 증가했지만 물가지수등과 비교해 보는 상대적 가치는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잉여가치가 20프로 증가했다고 해서 노동자 임금 20프로 인상이라는 형태로 그 전리품을 모두 건네줄 회사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즉, 노동은 필연적으로 자본에 뒤쳐지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폐해에 의해 공산주의가 온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은 현재로선 완전히 어긋난 것으로 판명됐다.  그러나 학자로서의 그의 경제적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의 가장 큰 수확은 혁명가로서의 마르크스가 아닌 한 명의 위대한 경제학자로서의 마르크스를 알게 됐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빈곤에 대한 정의가 가장 깊게 와 닿았다.  그는 경제적인 면과 동시에 영적인 면도 함께 생각했다.  

현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유한 주변환경에도 불구하고 단지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동과정의 지적 가능성으로부터 노동자를 소외시키는 수단에 노동력을 바쳐야 한다.

당시나 지금이나 영적인 의미에선 지극히 빈곤할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하긴 내가 너무 비관적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하루 최소 8시간의 일을 한 후엔 최대 한두시간을 나름대로 문화생활을 즐기며 살고 있으니깐..  하지만 과연 그것이 잘 살아가는 것일까?

물론 대안은 없지만 솔직히 난 무척이나 궁금하다.

의식이 생활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의식을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의 이론에 동감하기 때문이다.  사회구조는 늦든 빠르든 항상 변해왔다.  그렇다면 긴 자본주의 뒤엔 도대체 어떤 사회가 오게 될까??  내 남은 삶에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까?  물론 그 세상은 너무나 더디게 와서 그 변화를 채 깨닫게 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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