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째 그 자리에 있다. 조금씩 먼지가 쌓여간다. 가끔 눈길을 주곤 하지만 흔들리는 눈빛을 이내 다른 곳으로 돌린다. 차마 읽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물론 읽을 작정으로 샀다. 그것도 대충의 줄거리를 이미 알아버린 상태에서…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나는 그를 사랑했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나는.. 나는 그를 사랑했네.. 그 사랑이 이제 담담해지기를 더 이상 마음 졸이지 않기를, 마음 아파 하지 않기를 주문처럼 바랬다. 아직 효과가 없는 주문탓에 흔들리는 마음인 상태로 그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겐 그 마저도 모험인 셈이였다. 그 책으로 인해 기껏 외면해온 내 감정이 휘저어지기를 원치 않았으니깐.. 난 한낱 책 한권으로도 더 슬퍼질까 겁이 날 만큼 용기가 없었다.

소설 속 그 남자도 용기가 없었다.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지만 자신을 내던질 용기는 없었던 것이다. 그 여자 역시 그 남자를 미치도록 사랑했지만 그들의 사랑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것이였기에 언제나 뜬구름 같았다. 일상이 빠진 사랑은 그 여자를 지치게 했고 남자는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떠나는 여자를 잡지 못했다. 여자는 사랑한다면서 남자에게 자신을 놓아주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그랬다. 번잡한 세상살이와는 무관할 것 같은 순수한 사랑마저도 정상적인 사회적 관계가 될 수 없다면 그 시작은 비극으로 가는 예정된 티켓과도 같이 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에도 무수히 많은 조건들이 만족되어야만 한다. 조건없는 순수한 사랑이란 허울좋은 눈가림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 속 그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그 자체만으론 지극히 순수하고 열정적이지만 그것이 불륜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들의 사랑이 순수하다며 돌을 던지지 않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사랑은 예기치 않게 닥치는 교통사고와도 같다고 한다. 그 사고로 내가 얼마나 다칠 지 예상을 한다면 아예 차 근처에도 가지 않고 살아가야 할까?

내가 그 남자와 같은 경우가 된다해도 아마 같은 결정을 했을 것 같다. 평생을 그 사람을 잊지 못하며 후회를 하게 된다 해도 말이다. 사회적 책임과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는 윤리의식이 살아가는 내내 너무나 강하게 자신을 얽매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에 비하면 사랑이라는 건 순간적인 감정일 뿐이라고, 감정적이기 보다는 이성적 인간이 잘 사는 방법이라고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상이 빠진 사랑… 앞이 훤히 보이는 행복할 수 없는 사랑이 얼마나 사람을 공허하게 하는지 뼈저리게 알아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받는 관계에서만 행복할 수 있는 감정인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결국은 서로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깊은 생채기만을 남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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