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마 클럽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정창 옮김 / 시공사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장마가 지난 줄 알았는데 며칠째 심상치 않은 비가 내린다. 이렇게 추적거리며 비가 오는 날이면 좋아하는 음악에 빗소리를 곁들여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다. 적어도 내게는 비오는 날이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그런 것이다. 야근과 철야를 번갈아가며 일을 겨우 끝내고 집어든 책이 레베르테의 뒤마클럽이다.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책읽기에는 역시 추리소설이 제격이다.

레베르테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에서였다. 추리소설도 이렇게 지적이고 고급스러울 수가 있구나 하는 감탄을 마지 않았던 책이였다. <뒤마클럽>은 로만 폴라스키 감독의 조니 뎁 주연의 영화 ‘나인스 게이트’로 만들어졌고 책보다 먼저 영화를 본 탓에 책 읽기를 주저 했었다. 더군다나 추리소설에서 그 줄거리를 미리 알아버렸다는 것은 얼마나 맥빠지는 일인가는 다들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레베르테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레베르테는 역시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뒤마클럽은 뒤마의 육필본인 ‘앙주의 포도주’와 악마를 부르는 교본인 ‘아홉개의 문’이라는 두 권의 책을 중심으로 사건이 펼쳐진다. 이 두 권의 책은 의뢰인에 의해 고서와 희귀본을 사고 파는 중개자의 역할을 하는 책사냥꾼 루카스 코르소에게 가게 되고 코르소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다. 우리에겐 그저 ‘삼총사’의 저자 정도로 알려진 뒤마를 추종하는 뒤마클럽이 책 내용 중에 나오듯이 레베르테는 뒤마를 철저히 분석한다. 삼총사의 텍스트를 이 잡듯이 파헤치고 털어낸 그의 끈기와 치밀함에 그저 놀랄 뿐이다. 거기에 중세시대 악마의 왕국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한다는 마법서인 ‘아홉개의 문’에서는 신비함과 마술적인 환상이 뒤마의 치밀한 분석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추리소설 하면 그저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해결하기까지의 여러 에피소드들이 나열된 책일뿐 그 이상의 문학적 문체나 지적 내용은 없다고 내리깍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레베르테의 추리소설은 그런 단순한 사고방식의 사람들의 뒤통수를 내리친다. 그의 책에서는 기본적인 추리소설의 법칙들과 재미외에도 충분하고도 넘칠만큼의 지적 허영이 있다.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에서는 플랑드르 학파의 그림들과 체스게임에 대해서 그랬었고 이 책에서는 뒤마와 그의 저서들에 대해 거의 전문적인 논문이라 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의 지식들이 가득차 있다.

내가 레베르테의 책에 열광하는 것은 따분할 수도 있는 전문적 지식들을 일반 문학 서적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잘 풀어놓았다는 것이고 거기다 더해서 치밀함과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 추리소설로서의 미덕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늦은 여름 휴가를 갈 내 손엔 이미 또 한 권의 레베르테의 신작이 쥐어져 있다. 레베르테의 다른 작품들도 빨리 번역됐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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