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의 진자 1 - 개정판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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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를 만난 것은 그의 명성이 이미 널리 알려졌던 데에 비해 무척 늦은 시기였다. 작년 이맘 때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라는 책으로 푸코를 알게 됐으니. 그 책은 제목만큼이나 유쾌하고 명징한 책이었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듯 선입견이라는 건 언제든지 우리 뒤통수를 칠 수 있음을 명심해야만 했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영화를 먼저 본 덕분으로 결말을 알고 있었던지라 그와의 두번째 만남은 <푸코의 진자>로 시작됐다.

아~ 난해했다. 불어, 라틴어 등의 원어들이 단지 한글로 인쇄되어 있다는 것이 번역의 의미인지 안그래도 내용 자체도 난해하기 그지없는데 따라 읽기도 버거운 그 언어들은 인내력을 매번 극한으로 몰고가는데 한 몫 단단히 했다. 중세 성당 기사단에서 비롯된 비밀 결사가 현재에까지 은밀하게 맥을 이어오면서 모종의 계획을 실현하려고 한다. 그 계획을 실현하는데 푸코의 진자가 나침반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지구 내부의 은밀하고도 절대적인 힘이 있어 그 힘을 지배하기 위한 여러 다툼으로 모든 역사적인 일들이 설명된다고 한다. 나폴레옹과 히틀러도 그와 무관하지 않고 세계 대전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런 황당한 내용은 마치 유사종교(類似宗敎)와 같은 이미지의 그들 비밀 결사에겐 진리와도 같다. 3류 출판업에 종사하는 주인공들은 광신도와 같은 그들의 믿음을 비웃으면서 한 술 더 떠 그들의 믿음을 정교하게 짜집기한 '계획'을 발명하기에 이른다. 여러 세기에 걸쳐 자기 자신들이야말로 그 계획의 일부였다고 확신하는 그들은 발명된(?) 계획의 덫에 걸리고 충실하게 수행하기에 이른다. 계획 속의 지도를 찾는답시고 온 세계를 들쑤시고 급기야는 그저 반 장난으로 계획을 발명한 주인공들을 뒤쫓기에 이르는데….
언제나 수 많은 역사적 사건을 목격하는데 지나지 않은 시대의 방관자였던 주인공 중의 한 명인 벨보는 계획을 발명함으로써 그의 손으로 새로를 역사를 쓰게 된다. 비록 그 최초의 역사에 재물이 될 수 밖에 없었지만 어쩌면 그 또한 스스로 선택하고 만든 역사의 한 부분이였을지도 모른다. 실재하지 않았던 계획이었지만 절대적으로 믿는 이들에 의해서 수행된다면 그 계획은 이미 존재하게 된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그 한계가 모호하다.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속에서 정작 줄거리를 이어가는 핵심적인 내용만 보자면 그 두께를 3분의 1만으로도 충분히 줄일 수 있을 것 같지만 은비학이나 연금술 등의 난해하고도 장황한 글들은 그저 쓰는 사람 마음이라고 생각해야 될 것 같다. 인내와 끈기로 드디어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서도 작가가 우리에게 무얼 말하고자 했을까 애매했다. 에코는 작품과 독자 사이에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독자들과 작품을 가로막음으로써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훼손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

그렇담 난 어떤 해석을 할까? 믿음…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한다고 철썩같이 믿는 사람들에겐 현실적인 존재의 유무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뒤죽박죽인 그들의 의혹들도 거미줄처럼 잘 짜맞추면 논리적이고 반박할 여지가 없는 완벽한 신화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잘못 여민 첫 번째 단추처럼 별 생각없이 발명된 그들의 계획처럼 역사나 운명은 얽히고 섞여서 종국에는 제어할 수 없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듯 하다. 이쯤에서 폴 오스터의 작품들이 생각나는 것은 작은 우연이나 한 사건에서 일파만파로 확장되어 빠져나갈 수 없는 운명이 되버리는 그의 소설들과 에코의 이 작품과의 유사성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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