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바다를 건너다니… 세상에는 저런 거짓말도 있구나.. ‘한국의 나비’라는 TV다큐멘터리를 보며 그녀는 그렇게 생각을 한다. 남편이란 존재를 털어버리기 위해 무작정 떠나온 중국에서 아이러니컬 하게도 남편의 뒷모습인양 뒤따라간 어느 남자의 흔적은 붉은 색 문신하는 집에서 멈춰져 있다. 바닷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소금기 가득 머금은 찢어진 나비의 날개가 문신의 견본으로 장식되어 있다. 나비가 바다를 건넌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였나 보다.나비 문신을 하고자 하는 그녀에게 주인은 언젠가 나비 문신을 한 사람이 다음날 바다에서 몸통은 사라진 채 허우적대던 팔 다리만 남아있었다며 극구 말린다. 바다를 건너는 나비를 믿지도 않았던 그녀가 그녀 몸 안에 스스로 생채기를 내며 문신을 하고자 한 것은 찢겨진 나비의 아픔이 새삼스럽지 않았음 이였던 모양이다. 그녀에게도 눈부신 시절이 있었다. 25세, 그 빛나던 나이에 그녀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그와의 결혼뿐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의 눈부신 25세를 한 순간 빛을 잃게 하는데 한 몫한 그녀의 그…패기만만한 그녀의 남편은 사표를 던지고 나온 후 3년 동안 실업자였다. 3년 동안 그는 달라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를 달라지게 한 것은 다름아닌 현실 속에서 무력한 자신을 처절히 알아야만 하는 모욕과 굴욕이었다. 재취업한 그는 확실히 달라졌다. 휴일도 없이 일에 파묻혀 사는 그는 일에서 만족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자신의 작은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한 안간힘은 아니였을까?어느 날 술에 만취한 그는 울부짖는다.-빌어먹을… 젠장… 이게 전부일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 안 해봤는데 말야… 그런데 이게 전부 더라구.. ‘그와 그녀의 소통할 수 없는 엇갈림은 그가 말한 ‘이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그녀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세상이라는 바다를 건너느라 갈기 갈기 찢겨져 몸통만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허우적거림을 포기할 수 없다. 포기란 곧 바다에 빠짐을,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만한 시선은 진작에 찢겨진 날개와 함께 사라졌다. 그에게 남은 건 망망대해 속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는 빈 몽뚱아리 뿐이다. 하지만 그녀 또한 그런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어린 시절 처형 장면을 본 이후로 한 쪽 눈이 멀어버렸다는 남자. 죽음을 본 눈은 더 이상 삶을 볼 수 없어서 스스로 멀어버렸다. 남아 있는 눈은 차라리 죽음보다 더한, 살아서 못 볼 것들을 모조리, 남김없이 다 봐야 한다고 일생을 살아가는 남자. 죽음만큼, 아니 더 치열한 삶은 어쩌면 죽지 않고 살아 남음에 대한 치뤄야 할 과제일지도 모른다. 바다속에 곤두박질 치든지 아니면 죽을 힘을 다해 날개짓을 하든지 선택해야만 한다. 팔다리가 없어 마주 안을 수조차 없는 몸통뿐인 그를 그녀는 과연 안아줄 수 있을까? 찢겨진 날개의 나비와 그와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 안아줄 수 있는 연민이다. 뚝뚝 떨어지는 것이 눈물인지 소금물에 절인 바닷물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