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 시공아트 12
프랭크 휘트포드 지음, 김미정 옮김 / 시공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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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죽음과 소녀’라는 제목만으로 슈베르트의 음반을 주저없이 고른 적이 있다. 죽음과 소녀라… 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청순하고 처절한가.. 그런 이미지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가슴 한 켠이 슬픔과 애절함으로 뒤범벅이 된다. 환희와 기쁨을 찾아도 힘들 판인 세상살이에서 돈을 투자하면서까지 슬픔 속으로 빠져들려 하는 심리는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어쩌면 다른 이의 비극성에서 위안을 삼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실레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같은 제목의 ‘죽음과 소녀’이다. 죽음을 상징하는 듯한 검은 옷의 인물이 상처입고 지저분한 소녀를 포근히 껴안고 있는 모습..

에곤 실레는 1910년대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한, 클림트의 영향을 받은 표현주의 화가 중 한 명이다. 28살의 젊은 나이에 당시 전쟁에서보다 더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는 인풀루엔자에 감염되어 나흘만에 천재적인 생을 마감한다. 생을 마감하기 직전부터 안정된 결혼생활등의 영향으로 화풍이 바뀌기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린 그 완성을 보지 못했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과 두려움의 소재인 죽음과 성은 항상 그의 그림의 모티브였다. 욕망과 금기의 자극적인 주제들을 뒤틀리고 적나라하게 표현한 그의 그림들이, 역시 엽기적이고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현대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 관심이 예술적인지 단순한 호기심인지에 따라 평가가 판이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의 그림의 기괴함이 좋다. 괴기스럽고, 어긋나버린, 편하지 않은 부담스러움이 좋다. 결코 세상 속에 함께 하지 못한 채, 한정 없이 밀려나야만 하는 그림 속 이미지들이 좋았다.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결코 관찰자들을 편히 놔두지 않는다.

우리는 역겨움과 뒤틀림으로 거북해 하고, 때론 환멸까지 느끼면서도 결코 시선을 떼지 못한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의 일부를 보게 되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의 처지와는 다르게 실레는20대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꽤 이름이 알려진 화가였다. 또한 부유한 후원자들에게 둘러싸여 경제적으로도 궁핍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레는 세상으로부터 천재성을 인정 받지 못해 고뇌하고 고통 받는 불행한 예술가로 각인되기를 바랬다. 그의 속내는 이런 식이였지만 여전히 그의 외모는 깔끔한 옷차림 이였고 사치스러웠고 지나친 나르시즘적인 자기애를 가졌었다.

몇 년 동안 헌신적이던 정부 발리와 미련 없이 헤어지고 순진한 처녀와의 결혼을 감행한 것을 보면 그의 이중적인 가치관은 지극히 위선적이고 속물적이다. 이처럼 늘 충돌하며 갈등하는 가치관들이 그의 그림의 적지않은 부분에 반영된 것은 아닐까? 그의 그림들이 심리학자들에게 연구용으로 사용되곤 한다는 것을 보면 무리한 상상은 아닌 듯 하다.

화가는 늘 그림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한다고 한다. 그의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지속됐던 조화를 이루지 못한 내면의 갈등은 비루한 일상에서 자신을 표현할 대안을 찾지 못하는 소극적인 현대인들에겐 오히려 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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