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 하서명작선 69 하서명작선 100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 하서출판사 / 2000년 3월
평점 :
절판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나 ‘악령’에 비해 ‘가난한 사람들’은 대체로 쉽게 읽히는 책이다. 카라마조프의 형제와 악령이 그 분량이나 심오하고 철학적인 인간본성에 대한 무거운 주제탓에 큰 맘 먹고 인내하며 읽어내려가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아하거나 혹은 운명적인 짜릿한 러브 스토리와는 거리가 멀다. 거의 매일 주고 받는 편지로만 이야기가 이어지고 그 내용 또한 너무나 일상적이고 관조적이라서 강한 흥미를 유발시키지는 않는다.

특히나 책의 제목이 사랑에 관련된 것이 아닌 단지 가난한 사람들인 것처럼 사랑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가난하고 구차한 일상에 대한 내용이 더 많다. 지지리도 궁상스러운 사랑을 그것도 정신적인 사랑을 하는 바르바라와 마카르의 삶은 그야말로 청승 그 자체로 보일 수도 있다. 마카르가 묵고 있는 싼 하숙집의 가난한 이웃들에 이야기는 어쩌지 못하는 가난 때문에 비굴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슬픈 인생들을 보여준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세상에서 버림받은 이 사람들의 희망없는 삶을 지극히 일상적이고 객관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가난이 처음에는 충격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편지가 한 통 한 통 쌓이면서 가난 특유의 침울하고 의기소침한 분위기 속으로 침잠해 가게 된다. 그리고 서서히 죄어오는 아픔…

가난한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는 어쩌면 너무나 통속적인 소재일 수도 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것이 가난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세계의 이방인이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손가락질 받으며 하도 업신여김을 당해서 스스로 비굴해질 수 밖에 없는 초라한 이방인이다. 희망없는 삶을 살지만 그래도 사랑하기 때문에 살아갈 힘이 솟아난다고 하면 역시 웃음거리 사는 일일까? 하지만 마카르에겐 그랬다. 가여운 고아 소녀인 바르바라를 늙은 하급 관리인 마카르는 헌신적으로 사랑했고 그녀의 사랑만이 그를 지독한 가난속에서도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이자 희망이었다.그런데 가난한 사람에겐 사랑도 사치이다. 사랑도 돈이 있어야 된다는 사고방식은 너무나 속물적이지만 그게 가난하지 않은 대다수 사람들이 선택한 사랑하는 방식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겐 사랑도 비껴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그들은 세상의 따스하고 달콤한 곳에는 절대 끼지 못할 운명이기 때문에 그 한가운데에 있는 사랑에는 역시 얼씬거리지 않는 것이 자기 분수를 잘 아는 것이다.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원치 않는 결혼을 하며 이것이 마지막 편지라고 할 수 밖에 없었던 바르바라는 과연 행복해 질 수 있었을까? 도스토예프스키는 가난하고 학대받는 인간들에 대한 애정과 강한 연민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떠나지 말라고 울부짖으며 마지막 편지를 쓰는 마카르의 비극적인 통곡은 작가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역설적인 사랑표현 방식인가 보다. 사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지 않는 나는 그렇다면 세상의 행운아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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