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을 사랑하라 - 20세기 유럽, 야만의 기록
피터 마쓰 지음, 최정숙 옮김 / 미래의창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자극이 필요했다.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 매일 똑같은 일상에 지칠대로 지쳐가고 있었다. 친구와의 대화도 그저 귓속을 맴돌뿐 공허했고 낯선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광들도 그림엽서의 프린트마냥 건조해 보였다.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어떤 자극이 필요했다. 무료하고 권태로운 일상에 무엇이 돌파구가 되어줄까? 그 즈음의 내 하루 하루는 그렇게 가고 있었다.

보스니아 내전… 언제인가 신문지면에서 본 굵은 인쇄체의 제목 정도가 기억이 났다. 무료한 21세기의 평범한 직장인에게 영화가 아닌 가까운 어디에선가 벌어진 전쟁 이야기 정도면 어쩌면 쇼킹한 자극이 되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 한번 기대를 해 볼까 하는 심정으로 –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나는 내 자신이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인간으로 태어난 자체만으로도 수치스러웠고 죄스러웠다. 차라리 짐승이나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로 태어나고 싶었다. 내세가 있다면 진정 그러고 싶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런 감정으로 괴로워해야만 했다.

이 책은 1992년 밀로셰비치의 세르비아가 보스니아를 침공하면서 벌어진 보스니아 내전의 이야기이다. 이 내전으로 27만명의 사망자와 2백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기독교계인 세르비아와 회교도계인 보스니아 주민들은 내전 전에는 민족이나 종교간의 별다른 갈등없이 서로 결혼까지도 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어제는 이웃이었던 사람들이 회교도인 무슬림들을 몰아낸다는 인종청소를 자행했고 부녀자들을 집단적으로 강간했으며 단지 즐기기 위해서 고문을 했으며 사람들을 사살했다. 여기에 서유럽 국가와 미국 영국등의 강대국들과 유엔은 이 추악한 내전에 발 들여놓지 않으려고 오히려 진실을 왜곡하고 축소해서 발표하기에 급급했다. 더 나아가 세르비아에 일방적으로 고통받는 보스니아에 무기 금수 조처를 해제하지도 않았다. 몇몇 양심있는 외교관들은 고위층의 진실외면에 환멸을 느끼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저자의 말대로 문명화된 20세기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그들의 고문과 비인간적인 행태들에 대한 내용은 읽는 도중 역겨움을 느끼게 할 정도이다. 이 책은 단지 세계 어느 한 구석의 민족간 종교간의 갈등으로 어쩔 수 없이 벌어질 수 밖에 없었던 내전에 관한 기록이 아니다. 문명화된 인간의 내면에 여전히 숨어있는 잔혹한 야수성에 관한 적나라한 고발이다.

읽는내내 의문이 생겼었다. 전쟁 전에는 말끔하게 넥타이를 매고 서류가방을 든 채 출근하던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하던 이웃 사람들을 단지 종교나 민족이 다른 적이라는 이유로 강간하고 고문할 수 있을까? 혹시 그런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애초에 이상이 있던 사람들은 아니였을까? 과연 내가 그들이라도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을까?

저자는 경고한다. 보스니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이 지구상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일어났으며 또 앞으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어쩌면 남 북으로 갈라진 우리나라만큼 그 가능성이 많은 곳이 있을까?

너무나 비참하고 처절해서 출근시간 전철에서 읽다가 눈물을 참아야만 했던 적도 많았다. 출근해서도 한참동안 진정되지 않아 피지도 못하는 담배로 마음을 억눌러야 할 때도 많았다.

그들의 고통에 대한 슬픔에 앞서 단지 내 자신이 인간이라는, 그리고 그 안에 어쩌면 똑같이 잔혹한 야수성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과 부끄러움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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