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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읽어주는 남자 - 오페라 속에 숨어 있는 7가지 색깔의 사랑 이야기 ㅣ 명진 읽어주는 시리즈 2
김학민 지음 / 명진출판사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십년도 더 전이였다. 그 때 난 수험생이였는데 맘이 잡히지 않아 거리를 하릴없이 헤매고 있을 때 대학로에선 무슨 거리 축제인가를 하고 있었다. 늦가을 저녁이라 꽤 쌀쌀했는데도 불구하고 커다란 공용 주차장의 바닥에 멍하니 앉아서 공연을 보고 있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중적인 무대에 자주 서는 테너가수의 공연이었다. 추워서 부들부들 떨면서도 난 그 때 인간의 목소리가 저토록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사실에 경이로왔다. 그게 성악에 대한 내 동경과 어설픈 사랑의 시작이었다.
음악이란 참 이상하다. 같은 작곡가의 같은 음표들로 구성된 곡인데도 연주하는 사람, 부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음악이 된다. 또 음반으로 들을때나 실제로 지척에 가서 들을때의 감동이 천지 차이이다. 또한 음반으로 들을땐 스피커의 성능에 따른 차이가 만만치 않아서 거금을 투자해서 앰프를 사고 스피커를 구입하는 오디오 광들을 한심하다 할 수도 없다. 한 번 그 느낌의 차이를 알았다면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거금을 투자할 여유도 없고 비싼 오페라를 볼 기회도 없었다. 가난한 음악에 대한 내 사랑은 그저 몇 달에 한번 맘먹고 음반을 사는 거였고 종일 클래식 방송에 주파수를 맞춰놓는 걸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래도 난 충분한 환희를 느낄 수 있었고 만족을 느꼈다. 굳이 음악이론을 알지 못해도 그 음악들이 말하는 슬픔과 기쁨, 비탄과 경이로움은 누구나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의 갈증은 있었다. 그게 바로 오페라다.
애절하게 무언가를 호소하며 부르는데 그 내용이 차츰 궁금해졌다. 오페라는 뮤지컬이나 연극, 드라마와 흡사한 것 같다. 그러니 그 내용을 알게 된다면 노래의 감동이 더 배가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서관의 먼지쌓인 책을 찾을 시간과 노력까지 기울일 필요는 없다. 바로 이 책을 읽기만 하면 되니깐..
이 책은 비제의 카르멘이나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등의 사랑을 주제로 한 유명한 오페라 7편의 이야기를 친절하게 해 주고 있다. 특히나 페이지 곳곳에 실제 오페라 장면과 무대디자인과 의상의 삽화들이 있어 읽는 내내 마치 오페라의 귀빈석에 편히 앉아 관람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책에서 언급한 오페라의 몇 몇 아리아를 다시 음반으로 듣게 된다면 노래하는 그 사람이 왜 그토록 애절하게 호소했는지 혹은 경쾌한지 드디어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도 나왔던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중의 ‘달콤한 산들바람(che soave zeffiretto)’을 들으며 그 음악이 백작을 골탕먹이기 위한 두 여인의 거짓 편지쓰기에 대한 내용이라는 걸 안다면 곡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유쾌한 웃음까지 지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오페라와 관객들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매개체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마치 전혀 알 수 없는 외국어로 진행되는 세미나의 번역기와도 같이 소중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저자인 김학민씨가 다른 오페라도 소개해 줬음 하는 욕심이다. 그래서 1권 2권 3권등의 시리즈로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나처럼 가난한 음악 애호가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