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음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어느날 그는 너무도 싫증이 나서 아무렇게나 뒤집은 단 한장의 카드에 모든 것을 걸 때까지…’라는 문장은 이 책의 주인공 나쉬가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에서 우연히 읽게 되는 부분이다. 이 문장 하나로 소설 속 나쉬의 자칫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전부 설명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연의 음악’은 제목 그대로 ‘우연’들이 음악처럼 조합된 이야기이다. 단 그 우연은 우리의 일상에서처럼 그저 스쳐 지나갈뿐인 우연이 아닌 삶을 송두리째 뒤바꿀 수 있는 것들이다.

나쉬는 어찌보면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조용한 도시의 소방수로서 자기 직업에 사명과 만족을 느끼며 살아가고 어린 딸아이가 있지만 부인은 얼마 전 집을 나갔다. 하지만 미국이란 사회에서 이정도면 평범한 편일 것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갑자기 몇십년동안 소식이 끊겼던 아버지로부터 거액의 유산을 받게 되면서부터 그의 삶에서 우연은 필연이며 운명이 되어버린다. 차를 몰고 가다 쓰러질 듯 걸어가는 젊은이를 본다든가, 그 젊은이의 한탕 도박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던가 그리고 황당한 빚갚음에 대한 제안을 받게 된다던가 하는 것은 살면서 수없이 많이 부딪치는 조금 특이한 우연일 뿐일 수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상황들 앞에서 지극히 현명하게 어찌보면 소극적이지만 최소한의 위험부담만을 안게 될 쪽으로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그들의 삶은 내내 완만한 곡선을 그릴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 나쉬는 어느날 갑자기 삶에 너무도 싫증이 나서 단 한장에 카드에 인생을 걸 듯 그 앞에 나타난 우연을 운명으로 만들었다.

우연은 우리의 의지에 무관하게 다가와서 짐짓 시치미를 떼고 순진한 학생처럼 우리의 판단을 다소곳이 기다리지만 그것이 운명이 될 때에는 전제국가의 우두머리처럼 삶을 송두리째 지배해 버린다.

하지만 선택의 권한은 어디까지나 개인에게 있는 것이므로 우리는 우연이든 운명이든간에 하소연할 형편이 아니다. 비록 나쉬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끝내는 죽음을 택했지만 그 또한 그의 의지에 의한 결과였으므로 우리는 그의 삶을 동정하거나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이 책은 폴 오스터의 다른 작품인 ‘거대한 괴물’에서와 같이 평범한 듯 보이는 보통 사람들의 내면적 고독과 자유에 대한 의지에 대한 방황을 엿 볼수 있다. 어느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영혼처럼 그들 내부를 조금 들여다보면 끊어오르는 고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단지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도록 살아가며 훈련되어지고 있는 듯하다. 자칫 내면을 들여다보다 보면 수많은 나쉬가 생길 수 있고 그것은 사회적으로 보면 커다란 혼란이고 손해일 뿐이다. 항상 우리 외부를 보며 오늘의 일상과 주변사람들의 생각과 자신의 미래를 함께 결정짓는 거야말로 안정된 삶을 사는, 이 세상을 뒤쳐져서 살아가지 않을 수단인 것이다.

그래서 슬펐던 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점점 내 안으로 깊숙히 들어가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서..? 그래서 나쉬처럼 어느 햇살 좋은날 내 삶에 갑자기 싫증이 나서 단 한장의 카드에 모든 것을 걸게 될까봐 그래서 두렵고 슬펐던 걸까?

내가 내 안의 자유와 정체성에 대한 욕구에 대해 귀기울여 삶을 송두리째 바꾸든 안 바꾸든지에 대해 선택을 내리는 것은 오로지 혼자만의 의지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이 한권의 책이 그 기로에 서게 한 ‘우연’이 되어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이다. 자, 이제 결정할 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