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폴 오스터란 이름을 종종 듣게 되었다. 잊을만하면 주위에서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고 언젠가 한번은 그의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책들이 꽤 여러 권 번역된 걸 보면 인기작가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사전지식없이 제목들만으로 그의 책을 선택하자니 그나마 추리소설이라는 이 책이 제일 만만했다. 그리고 그냥 무턱대고 읽었다. 이런 식으로 난 그의 세계에 지극히 가벼운 마음으로 발을 들여 놓았지만 이내 곧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을 거란 걸 알게 됐다. 솔직히 이 책의 줄거리는 추리소설 치고 특이하거나 놀랍지는 않다. 부부의 갈등과 배신과 복수, 거기에 정치적인 음모가 약간 가미되고 암흑세계의 비정상적인 계약이 흥미를 좀 더 주는 정도이다. 제목부터 야구경기의 용어이고 피해자도 미국 메이저리그의 유명 야구선수로 나오고 책 중간 중간에 야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걸 보면 작가가 야구를 꽤나 좋아하는 것 같다. 이 대목에서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난 별로이다.(야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아무튼 뻔한 줄거리의 추리소설을 읽게 된다면 뒷이야긴 하나마나 실망이리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난 이 점이 스스로에게도 참 신기하다. 그 뻔한 결말이나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꽤 진지한 관심과 흥미를 이끈다. 일단 사건의 해결사인 타락한 법조계에 실망하고 사립탐정인 된 전직 변호사 클라인의 개인적인 면모가 흥미롭다. 그의 조금은 불안하고 철저하지 못한 사건 해결방식이나 말도 안되게 배짱좋은 복잡한 심리상태가 정작 범인과 주변인물들의 심리묘사보다 더 우리의 흥미를 이끄는 점이 뻔한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게 책을 잡고 있게 만든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다른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긴박함과 더불어 내내 유쾌할 수 있는 재치이다.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유쾌할 수 있다는 건 사건을 속 시원히 해결한다던가 하는 방식 때문일때이지 이 책에서처럼 재치있는 문장때문이기는 힘들다. 의문의 살해가 계속되고 사건은 오리무중으로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동시에 발버둥치듯 재기발랄한 문장들은 폴 오스터라는 작가에 대한 신뢰감을 생기게 만든다.이 한 권의 책으로부터 이제는 스스럼 없이 그의 책을 집어들게 만들 것이다. 그건 작가로서의 커다란 행운일 수 있지만 그 행운이 완전히 그 스스로 만든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독자들은 그에게서 경이로움까지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의 세계에 첫 발을 들여놨으니 지금부턴 서점에 즐비한 그의 세계들에 맘 놓고 풍덩 빠지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