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유홍준 지음 / 창비 / 199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다 큰 맘 먹고 여행 계획을 세울때가 있는데 그건 대개 해외여행이었다. 고등학교 졸업때까진 그나마 소풍이나 수학여행으로 원하든 원치 않든 국내 명소를 찾아가게 됐지만 대학입학시부턴 무슨 유행처럼 해외여행 한 번 안 가면 큰일인줄 알았다. 가고 싶은 곳을 생각하자면 국내에선 영 떠오르는 곳이 없는데 눈을 밖으로 돌리면 어찌나 가고 싶은 곳이 많은지 여행 적금까지 친구들이랑 넣으면서 꿈에 부풀었었다.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의 난 그랬다. 제목처럼 이 책은 유홍준 교수의 남도 문화 유산 답사에 대한 기행문이다. 하지만 직접 내 발로 찾아가고 내 눈으로 유물들을 보지 않는 이상 짧지 않은 분량의 책을 읽노라면 지루할 수도 있다. 여기에 적절히 유물의 역사적 배경과 유물 둘레의 자연들을 유려한 말솜씨로 풀어나가기에 읽는 내내 우리는 그 자리에 유 홍준 교수와 함께 있게 된다. 유물의 세세한 형태적인 특징과 양식에 대한 정확한 전문적인 지식은 이 땅에 살면서 전혀 전통의 가치를 알지 못했던 우리 자신을 한없이 부끄럽게 만든다.

유홍준 교수는 답사를 올바로 가치있게 하려면 그 땅의 성격, 즉 자연지리를 알아야 하고, 그 땅의 역사, 즉 역사지리를 알아야 하고,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내용, 즉 인문지리를 알아야한다고 말한다. 문화지리라는 성격을 갖는 답사는 이런 바탕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몇 번 되지도 않는 나의 답사 여행의 바탕은 국사시간에 달달 외우던 지식이 전부였다.

그것도 늘 벼락치기 공부였던 터라 구멍난 신문처럼 아귀가 맞지 않는 흐릿한 기억들이였다. 그러니 답사라고 하기에도 부끄럽고 또한 그런 여행이니 국내 여행은 더 고리타분하고 지루할 뿐이였다. 다보탑과 석가탑을 보며 ‘음..역시 모양이 다르군..’하는 정도였고 첨성대를 보곤 그 작은 규모에 여지없이 실망을 했었다.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는 저자의 말처럼 난 여태까지 보아도 볼 수 없었고 그래서 아무런 느낌을 가질 수 없었나 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고나선 흐드러진 동백꽃이 아름다운 고창 선운사나 초의선사가 칩거했다던 일지암,하늘아래 끝마을이라는 설악산 진전사터가 그동안의 내 여행목적지 1순위이던 이탈리아와 스위스를 가볍게 제껴놨다. 이제 다시 친구들과 국내여행 적금을 들어야겠다. 그리고 그 여행내내 내 옆자리엔 이 책이 자리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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