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브르 - 1,2권 합본 (양장) 비앤비 유럽만화 컬렉션 3
발락 지음, 이슬레르 그림, 이재형 옮김 / 비앤비(B&B)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사실 나는 만화를 즐겨보지 않는다. 특히 책으로 된 만화는 거의 안 보는 편이다. 하지만 이 책은 만화라기 보다는 매페이지가 충분히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는 듯 했다. 책장 가득채운 어둡고 침울한 갈색과 회색톤의 그림들과 그래서 더욱 눈길을 강하게 끄는 타는 듯이 붉은 색들은 굳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읽지 않아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붉은색은 정열을 나타내기도 하고 살인과 잔인함, 광폭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피의 색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것은 생명과 죽음을 동시에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붉은 색 눈의 쥴리는 광기어린 사랑을 하고, 죽음같은 사랑을 한다. 창녀의 딸인 쥴리와 지방 귀족인 내성적이고 연약한 붉은 머리의 쌍브르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는 19세기 프랑스의 어지러운 시대와 맞물려 그 비극성을 더한다.

자신의 눈을 파내며 자살을 하는 쌍브르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유작인 눈의 색깔에 관한 이론과 쌍브르에게 집착하는 쌍브르의 누나와 남편의 장례식날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는 쌍브르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관위에서 사랑을 나누는 쌍브르와 쥴리.. 굴절된 가족사와 함께 쌍브르의 아버지와 쥴리의 어머니 사이의 관계에 대한 숨겨진 진실등은 당혹스럽고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삶을 함께 하기를 원했던 쌍브르에게 죽음을 함께 하자 했던 쥴리지만 결국 그들은 죽음을 함께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쌍브르가 죽는 순간 쥴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니지 않았을 것이다. 사춘기 시절 사랑이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여야만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로미로와 쥴리엣의 비극적 죽음을 동경했었고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아파하던 베르테르의 슬픔에 진정으로 동감하며 아파했었다. 하지만 이제 서른 중반이 되어가는 대부분의 우리는 ‘사랑도 순간이다. 배고프면 사랑도 식는다’며 사랑보다는 조건을 택하며 결혼을 하는 것을 부담스럽지 않게 바라보게 되었다. 또한 세월이 약이다며 첫사랑이 잊혀질때쯤 다른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이 채 식기도 전에 사랑인지 호감인지 모를 교감을 느끼며 일생을 같이 하게 되기도 한다.

죽음까지 함께 할 만한 사랑이란 책이나 영화에서나 나오는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코웃음 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뜨끔뜨끔한 몽우리가 잡힐 듯 했다. 어쩌면 이 책의 한 구절처럼 인생의 최선의 해결책으로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더 이상 배신하지 않고,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길을 택했던 걸까?

자신의 죽음을 한 여자에게 바치기로 한 맹세 때문에 자신의 목숨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으로 생각했던 쌍브르에 비하면 오로지 내 삶과 죽음이 내 것인 나의 삶은 진정 행복하고 다행스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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