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역사발전에 따라 기존 사회체제를 변혁하기 위해 이제까지 국가권력을 장악하였던 계층에 대신하여, 피지배계층이 그 권력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탈취하는 권력교체의 형식이다. ‘ 혁명에 대해 백과사전은 이렇게 설명한다.이처럼 혁명은 말그대로 거창한 것이다. 그래서 평범한 범인들은 감히 권력을 가진 지배계층들의 온갖 비리와 파행에도 불구하고 귀막고 눈감은채 어쩔 수 없으니 팔자려니 하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렇게라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그들앞에 맞서고 제 할말을 다하는 게 얼마나 큰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자신과 가족들에게 또 얼마나 큰 희생을 요구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우리와는 뭔가가 틀린 사람.. 우리에겐 없는 불굴의 의지와 명석한 두뇌를 가진 ‘영웅’같은 기질의 사람만이 그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내심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책으로 접했던 소수의 혁명가들도 역시 그런 영웅적 인물들이었다. 완벽한 지성과 의지의 엘리트 출신인 체 게바라, 자유 무정부주의자였던 미하일 바쿠닌 그리고 뒤틀린 천재였던 아돌프 히틀러…하지만 전태일은 너무나 평범해서 지금도 우리 옆을 지나가도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을 인물이다. 아니 평범하다 못해 오히려 소외되고 힘없고 나약한 인물이다. 하는일마다 안되서 술을 입에 달고 사셨던 아버지와 가난을 대물림해서 사셨던 어머니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학교보단 구두닦이 통이 더 가까웠던 그의 동생들…

너무나 처절하고 소외된 가난한 그들의 삶이 정말 얼마전까지 우리들 곁에 존재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마저 든다. 농담처럼 놀리듯 말했던 그 ‘시다’들이 사실은 13세에서 15,6세의 소녀들로 먼지구덩이 속에서 햇빛 한번 못보고 하루 열여섯시간의 노동으로 온갖 질병에 시달렸던 것이다. 난 여태껏 몰랐다. 정말이지 까마득히 내가 학교다니고 뛰어놀 때 가난과 질병의 음지아래서 그토록 시달리던 또래들이 있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아침을 라면으로 떼운 1970년 11월 13일. 스물두해의 짧은 삶을 전태일은 서울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스스로 몸을 불살라 죽었다. 누군가가 도와 달라고, 앞장서 달라고, 대신 이 세상의 어두운 짐을 짊어져달라고… 결코 아무도 그에게 권하지 않았지만 그는 스스로 그들을 돌보지 않으면 안되리라 생각했다.

솔직히 책을 읽는 내내 나도 속으로 그를 말렸다. 그냥 그대로 기술이나 익혀서 재단사가 되고 착실히 월급을 모으면 평생을 가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어머니와 동생들도 좀 더 쉽게 행복할 수 있었을텐데.. 공장의 혹사당하던 수많은 노동자들은 그냥 잊어버리라고.. 그렇게 그에게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들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버리기로 했다.

세상이 그의 말에 조금만 귀를 기울였어도 그는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지 않아도 됐었을 거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쯤 중년의 신사가 되서 그도 다른사람들처럼 처와 자식들과 함께 ‘복’이란 걸 누리지 않았을까? 굳이 그를 죽여야만 우리 노동 현실이 개선이 되었던 것일까? 이제 하늘위 어느 따스한 햇살속에서 그토록 사랑했고 불쌍히 여기던 이 땅의 노동자들을 그는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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