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그랬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난 이미 삶이 절망스러웠고, 또 외로웠다. 잡히는 대로 책을 읽으면 좀 덜 해질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으로 눈이 아프게 책을 읽었다. 노은림은 죽었다. 그녀는 세상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희망이 있었다. 그녀는 사랑을 잃었고, 오빠와 가족을 민주화운동으로 잃었으며, 그녀 자신도 병든 채 죽어갔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녀는 세상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나도 삶에 대해 확고했고 강했다. 그녀는 평화롭게 죽어갔다. 나… 나는 그녀만큼 끔찍하게(?) 사랑을 잃지도 았았다. 골치 아픈 민주화 운동같은 것엔 관심도 없었고, 그리고 아프지도 않은 채 가벼운 감기에나 걸릴 뿐이다.

그런데도 난 지금 삶 앞에서 절망스럽다. 삶 앞에서 어떠한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얼마 가지 않아 세상이 망한대도 별 아쉬울 것이 없다. 하루하루가 바쁘게 만족스럽게 살아가기 때문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절망스럽기 대문이다.

‘고등어’는 그 시대의 젊은이들 이야기다. 7,80년대의 대학생들의 힘겨운 청춘과 그 후의 후유증이랄까? 내 학창시절과는 판이하게 다른..슬펐다. 책 첫장부터 노은림의 유고일기장으로부터 그녀가 결국에는 죽을 거란 걸 알면서 한 장 한 장을 읽어내려갔다.

그건 슬픈 일이었다. 결국은 죽음이라는 아무리 평화롭고 삶에 용감하게 부딪히며 살아갔다고 해도, 역시 그녀는 병들었고 가족도 없이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는 고단한 삶을 사고 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슬펐다. 파리한 그녀의 손과 입술이 떠오르는 듯 싶다.
어쩌면 차라리 그녀에게 죽음이 안식처일 수도 있겠다. 세상의 희망을 온통 책임질 듯한 삶의 무게를 지지 않아도될 그저 자기 몸 하나 평안히 할 수 있을 죽음이라는 방식이 그녀에게 더 좋을 수도..

어쨌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시대의 아픔같은 거창한 삶을 살지도 않은 난 왜 이리 절망스럽다 느끼는 걸까? 노은림은 서른 세살을 코앞에 두며 죽어갔다. 난 이제 곧 서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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