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행복 -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정원을 걷다 열다
버지니아 울프 지음, 모명숙 옮김 / 열림원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버지니아 울프의 수필집 <모두의 행복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정원을 걷다>는 정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작가의 깊은 내면과 철학적 사유를 탐구하는 흥미로운 여정을 만난다. 영국여류작가인 버지니아 울프가 100년전에 섬세한 관찰과 직감을 통해 집필한 이 책에서 정원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물리적 장소를 넘어선다. 작가의 오랜 거처였던 몽크스 하우스의 정원처럼, 이곳은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휴식처이자 영감의 원천이며, 내면을 들여다보고 사색을 펼치는 성찰의 공간이 된다.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본질에 집중하게 하는 힘을 가진 상징적인 장소인 셈이다.

이 수필집을 읽다 보면, 작가는 자주 어린 시절 정원에 대한 기억과 현재 정원에서 느끼는 감각들을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러한 시제 변화는 독자에게 때때로 혼란을 줄 수도 있지만, 이는 버지니아 울프 특유의 글쓰기 방식이자 중요한 문학적 장치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의식은 시간의 순서대로만 흐르지 않고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인상이 뒤섞여 나타나는데, 이러한 비선형적인 전개는 인간 내면세계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특성을 생생하게 표현하게 된다. 정원에 대한 현재의 느낌이 어린 시절 기억을 불러오고, 그 기억이 다시 현재의 인식을 형성하는 과정을 통해 단일한 자아가 아닌 과거와 현재가 직조된 자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시제 교차는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시한다.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경험과 기억에 따라 유연하게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다는 모더니즘적 사유를 반영한다. 이는 과거의 기억, 특히 어린 시절 경험이 현재의 인물에게 얼마나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강조하며, 기억이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감정 역시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며 깊이와 복잡성을 더하게 되는데, 이는 독자가 작가의 복합적인 내면 풍경을 함께 느끼도록 해준다.

1919년 37세부터 직접 가꾸고 생활의 일부로 끔찍이 사랑한 뭉크스하우스는 경매물건을 울프가 낙찰받은 저택으로 라운드하우스와 3000제곱미터의 토지를 가지고 있었다. 계절마다 모습을 변화하여 등장한다. 정원에 꽃과 나무뿐 아니라 각종 채소도 가꾸고 과일도 가꾸었다. 육체적으로 고된 노동을 해야 했지만 을프는 이곳에서의 일상이 그 어느것보다 행복했다고 일기에 기록하였다.정원은 아름다운 경관은 물론 풍요로운 수확을 안겨 주었으며 울프의 작품을 완성해가는 데 '존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다. 울프는 비내리는 날 정원의 꽃들을 바라보거나 산책을 하면서 사유와 글을 쓰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겼다.

이 책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탐구다. 버지니아 울프에게 '존재'는 생물학적인 삶을 넘어, 삶의 순간순간을 깊이 느끼고 경험하는 상태, 즉 '존재의 순간(Moments of Being)'을 의미한다. 이는 외부 세계와 내면이 일치하며 강렬한 감각이나 명확한 인식을 느끼는 때로, 정원에서의 경험처럼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찾아오는 찰나의 깨달음이나 자신과의 깊은 연결감을 느끼는 순간들이 바로 진정한 '존재'를 느끼는 때라고 본다. 이러한 순간들은 불연속적일지라도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핵심이다.

반면 '비존재'는 작가가 '솜뭉치(cotton wool)' 같다고 표현한 상태다. 이는 삶이 기계적으로 반복되거나, 주변 세계나 내면과 단절되어 무감각하게 흘러가는 때를 의미한다. 깊이 있는 성찰이나 감정 없이 기능적으로만 살아가는 듯한 상태는 생물학적으로는 살아있지만 의식적, 감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유사하며, 삶의 의미나 행복을 느끼기 어렵다.


<모두의 행복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정원을 걷다>에서 정원은 바로 이러한 '존재'의 순간들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정원의 아름다움, 자연의 감각적 경험은 '솜뭉치'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존재의 순간'으로 이끌며, 어린 시절의 정원 기억과 현재의 경험이 교차하는 것은 과거의 '존재의 순간'들이 현재의 '존재'를 어떻게 형성하고 지속시키는지 보여준다.

이 수필집은 정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작가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독자를 안내하며, 삶의 질적인 경험, 즉 '진정으로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들'인 '존재'와 그 반대 상태인 '비존재'의 의미를 탐구하게 한다. 시제 변화와 의식의 흐름을 활용한 그녀의 글쓰기는 이러한 내면의 복잡성과 시간에 대한 사유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며, 독자 스스로 자신의 삶 속에서 '존재의 순간'들을 인식하고 가치를 부여하도록 이끄는 깊이 있는 울림을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