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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1
로렌 와이스버거 지음, 서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뉴요커.
이 말은 이미 뉴욕에 살고 있는 사람만을 지칭한다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보통 명사'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대단히 세련된, 다양함을 즐기는, 자기 일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의 화려함을 느끼게 한달까?
어쨌든 뉴욕의 범죄율이나 빈부격차라든가 위생, 안전 등의 문제를 접어두고
세계 모든 이목을 집중시키는 뉴욕이라는 곳이 매력적인 것 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뉴욕만의 이슈가 아닌 '패션'이라는 아이템을 적절히 활용한 이 소설을
읽은 내가 어떤 점에서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지 한 번 손꼽아 볼까?
첫째, 화려함.
명품 브랜드라 하면 샤넬, 구찌...에서 막혀버리는 나는 이 책에서 묘사되는 패션계의 대~단한 이름들의
나열을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 다른 세계를 구경하는 기분이었다.
마이클 코어스, 구찌, 프라다, 베르사체, 펜디, 아르마니..부터 시작된 다양한 패션 상품은
'사치'와 '낭비'에 대해 불쾌함을 느끼도록 정규교육과정을 받은 나로서도 입이 떡하니 벌어져버린다.
주인공이 일하는 '런웨이'잡지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런 화려하고 다분히 사치스럽고 때론
꽤 어리석어 보이는 이 패션 아이템들에 미쳐있고, 외모를 가꾸는 일에 온 열정을 바치기를 마다않으며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아니 대개 많은 뉴요커들이 상상하는 상류층 사회를 위해서
스스로를 바보로 만드는 일에 익숙하다.
이렇게 말하면 이들이 대단히 딴 세상에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글쎄?
몸짱, 얼짱 열풍 속에서 외모로 만들어 놓은 신분제도나 돈이나 권력에 갇혀있는 인간관계를
보는 일이 낯설지만은 않은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의 세계가 과히 먼 것만은 아니구나라고
조금은 씁쓸한 생각도 한다.
아..이런..
이런 도덕적인 경각심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는데.
어쨌든!
놀랍다할만큼 대단하신 이름들을 구경하며, 꽤나 사실적이라는(정말로 이렇단 말인가?라고 약간은
어이가 없지만) 뉴욕의 가장 화려한 곳에 대한 묘사는 미국 시트콤을 보는 것처럼 경쾌하다.
둘째, 치열함.
사회에 나가거나 부딪혀 본 사람들이 흔히 '세상은 만만치 않아.'라고 말하는 데
아..진짜 만만치 않다라고 할 만한 치열함이 있다. 주인공의 사회생활에는.
게다가 우습게도 이 치열함은 이성적으로 인정하기 힘든 부분에서 발휘되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상사의 아이들을 위해 해리포터 미발간본을 구하며,
상사의 따뜻한 아침을 위해 똑같은 메뉴를 하루에 다섯 번씩 주문하며,
상사가 먹는 물에 라임 한 조각을 띄워 꼭 테이블 '왼쪽'에 놓는 일을 반복하는 일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원하는 일'을 위해 '원하지 않는 일'을 참고 사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운이 대단히 좋아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며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일명 '성공'이란 걸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과 싸워야 하는지 새삼 실감한다.
땀을 뻘뻘 흘르며 자신의 꿈을 위해 밤을 새는 그런 보람이 아닌
하루에도 열 두번씩 그만 두고 싶을 만큼 무의미함속에 있어야 한다면
그 싸움은 더 힘이 드니까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이야기가 '상상'이겠지라고 생각될 만큼 낯설었지만
조금만 다르게 보면 불가능의 영역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구나 라는 걸 이해할 수 있다.
'소녀'라는 이름을 벗어 버렸다면 말이다.
어쨌든 한 젊은 뉴요커의 사회 1년차의 아등바등하는 모습과 모든 권력의 핵심이 되는 그녀의 상사의 모습
과 완벽한 대비를 이루면서 경쾌하게 흘러 간다.
도대체 이번엔 무슨 말도 안되는 일을 시킬까? 라는 미안한 호기심까지 들면서 앤드리아의 재치있는
입담과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화려한 뉴욕과 의도했음직한 그 곳에 대한 위트있는 비꼼은
'일용할 양식'으로서의 기능을 하진 못할지라도 '맛깔스런 후식'정도는 됨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