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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엔 당연한 게 있다. 아니, 당연한 게 있는 법이라고 믿고 있었다.
엄마의 잔소리가, 아빠의 심부름이, 언니와의 투닥거림과, 친구들과의 수다가,
그리고, 내일 아침 눈을 뜬다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일상이었다.
밤새 데워놓은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게으름을 피우면서도, 새벽 공기에 간지러운 코끝이 누구에게나 주어진 몫이라고, 나는 믿었다.
그런데, 어느 누군가는 그 아침이 두렵단다.
내일 아침 또 다시 눈을 떠서 다가올 삶의 끝을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그 시간들이, 그 시간 속에서 떠오르는 삶의 시간들이 두려운 사람이 있다는 걸 부끄럽게도 나는 몰랐다. 알았다면 내 아침이 더 소중했을텐데, 알았다면 내 일상이 감사했을 텐데.. 나는, 몰랐다.
그는 사.형.수.
묵직하게 가슴에 걸린 이 말이 책을 덮고 난 후에도 쉽사리 내려가지 않아 한참을 고생했더랬다.
나는 사형반대를 외치며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과격하게 '사형은 필요해!'라고 외칠 수 있는 주관도 없었지만 그들을 무작정 감싸 안을 포용력도 없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피해자가 되거나, 내 주변이 피해자가 되어도 그들을 '죽이지 말아 달라며' 빌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평화로운 삶 속에서 사형 반대를 위해 애쓰는 분들을 위선자로 여기기도 했다고 '진짜 이야기'를 나도 해본다.
그런데 이 책을 덮고 나면,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긴 그 사.형.수.라는 시퍼런 말이
멍처럼 맺혀버린다.
이야기의 구조는 아주 단순하다. 어린 시절이 불행했던, 하지만 겉으로 보이기에는 아주 달라보이는, 속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상처 투성이의 두 남녀의 이야기. 가장 흔하지만 그래서 늘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그들의 '사랑'속에서 상처 받고, 상처 주고, 결국에는 그렇게 멍만 들어 버린 아프기만 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 그리고 온 몸으로, 삶으로, 그들을 안아 주느라 이를 악물고 버티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읽게 된다. 분명 가슴으로 먼저 읽히는 이 이야기는 머릿속까지도 헤집어 놓아 버린다.
아..어떤 말을 해야할까?
그 이야기를 해볼까?
예전에 한 목사님 부부가 그분들의 아들을 살해한 남자를 위해 구명운동을 벌이셨다. 굉장히 이슈가 됐던 그 때, 인터뷰 중에 죽은 아들을 생각하며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 사모님 얼굴이 생각난다. 참다 참다 터져 버린 그 울음속에 나는 차마 알지 못하는 슬픔이 있다는 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셨다. 내 아들이 죽었다고 다른 생명까지 죽일 수는 없지 않느냐고, 용서했다라는 말이 아니라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
용서하고 싶다고.
용서하고 싶어서 살려주고 싶다고,,,그 목소리가 나는 아직 생생하다.
나도 그렇다. 어떠한 이유에서도 사형을 반대한다고 말 할 자신이 나는 없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인 그것이 지독한 잔인한 목적이건, 아니면 인위적인 차가운 목적이건 우리는 두려워해야 한다.
그 두려움을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 본다.
그래서 이해하지는 못해도, 사랑하지는 못해도, 슬퍼하지는 못해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이해하고 싶다고, 사랑하고 싶다고, 슬퍼하고 싶다고. 그렇게 말해야 한다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어쩌면 나처럼 울지도 모르고, 분개할지도 모르고,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조금 더 넓은 시선을 다시 한 번 가지게 될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도 이 질문을 한 번 해보는 건 어떨까 하고 부탁을 해본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말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을 주시며,
신이 우리를 이 아름답고 때론 지독히 악한 이 곳으로 보내며,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허락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냐고.
삶? 죽음?
뻔하지만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허락받은 사랑을 마음껏 쓰지 못하고 세상을 끝낸다면,
쓰지 못한 은행 잔고처럼 얼마나 아까울까..
그 사랑을 세상에 보내는 방법을 이 책을 배워보는 건 어떨까? 이 가을이 다 가기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