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묘지에 사는 남자
피터 S. 비글 지음, 정윤조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공동묘지는 죽은 자들의 집.

그 죽은 자들의 집에서 모든 살아있는 사람의 눈을 피해 사는 주인공은,

죽은 영혼들과 대화를 나누며, 혼자 체스를 두고, 말하는 까마귀가 물어다주는 음식을 먹으며 살아간다.

어떻게 그렇게 됐냐하면, 세상 많은 사람들이 '내 삶이 왜 이렇게 됐을까'의 질문에 하는 대답과 같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거기까지 흘러간게다.

그는 그렇게 '살아'있는 채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타난 한 남자 영혼과 한 여자 영혼, 그리고 남편을 잃은 한 여자.

줄거리야 책으로 잃는 편이 훨씬 즐거울테고,

그들의 유쾌한 대화와, 얼마쯤은 '나'를 대입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들의 삶의 이야기는

내 서평에서 간추려 쓰는 것보다는 시간을 들여 이 책을 읽는 것이 훨씬 좋을테니, 패스.

 

죽은 후의 세상에 대해서 그 옛날부터 우리 인간들은 얼마나 많은 궁금증이 있었는지야, 철학자들이 아직도 논하는 사항이므로 감히 내가 건드리지 않아도 되겠지만.

죽은 후, 우리가 살아있을 때 가졌던 모든 것을 '잊음'으로 완전히 죽을 수 있다는 작가의 생각은

공감을 일으키고 아직 살아있는 나에게는 어떤 안식을 주기도 하고 안타까움을 들게도 한다.

처음에는 나와 멀었던 기억들이,

그리고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나중에는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이 세상과 소통하는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는 것이 죽음이라면. 비롯 내가 믿고 있는 사후세계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 어쩌면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쿨한 죽음이야기가 아니구나를, 점점 느끼게 될 것이고. 쿨한척 죽는 게 별거야?라는 나의 태도도 어느 순간은 '사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이 책은 그런 묘미가 있다.

함께 밥을 먹는 다는 것.

이야기를 나눈 다는 것. 화를 내고, 손을 잡는 것.

얼굴을 쓰다듬고 목소리를 듣는 것.

친구를 만들고, 사랑을 고백하는 것.

옷을 입고, 추위를 느끼고, 용기를 낸다는 것.

인사를 나누고, 어제 일을 기억하며 웃을 수 있는 것.

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비를 맞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오늘 한 가지 이상은 했을 이 일이, 사는 것의 전부이며 의미가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책이라는 것.

우리는 이런 책을 많이 만났다.

사는 건 소중한 것이고, 일상은 포기해서는 안되며, 사랑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라는 것.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의 메세지가 퇴색하거나 '뭐야, 다 아는 얘기잖아'라고 넘어가게 되지는 않는 다고 자신할 수 있다.

 

지금.

여기.

집중해야 할 것들은 결국은 내가 얼마나 사랑하고, 얼마나 사랑한다고 표현할 것인가이고.

질리도록 봐온 이 주제가 이 책의 마지막을 향해갈수록,

우는 이야기 없이도 코끝이 찡해지고,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손을 잡고 당장에라도

'내가 지금 너를 사랑해.'

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을 경험할 수도 있을 거다. 어쩌면 나처럼.

 

우리의 삶이 언제나 아름답기만 하지 않지만, 그런 순간에도 사랑할 수 있기를.

황금에 눈이 멀어 반짝이는 그것들을 나무라는 목소리를 촌스럽게 여기게 된 현재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죽는 그 순간 바라고 원할 행복에는 그런 것이 단 하나도 없다.'

고, 말하는 마음 속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시간을 갖게 해준 이 책에, 나는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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