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내용은 간단하다.

치매로 생의 기억을 차례차례 잃어 가는 늙은 연쇄 살인범.

그가 데려다 키운 피해자의 딸.

그 딸을 노리는 또 다른 연쇄 살인범.

치매, 그리고 딸을 지키기 위한 연쇄 살인범...이라니.

세상에 이런 일이, 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아닌가싶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완전 새로울 것도 없어 보이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라는 말씀.

 

주인공이 기억하는 살인의 나날들은 마치 은퇴 후 젊은 날을 회상하는 늙은 아버지와 다름없다.

다시는 돌이킬 수도 없던 열정의 날들. 후회도 어리석음도 있었지만,

인생의 가장 꼭대기에서 무엇하나 거칠게 없던 그 시절의 그는 기억을 잃어갈수록 더욱 또렷해진다.

물론, 기억하는 젊은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란게.

누군가의 목을 조르는 일이라는 소름끼치는 악행이라는 것만 뺀다면,

그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처럼 보인다.

평범해 보이지 않는 다는 점. 평범하다는 범주에 드는 일을 전혀 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연쇄 살인범은 우리에게 두려운 존재다.

공감의 능력도 없고 동정도 없다. 사회의 기본 질서따위를 운운하지 않아도 그들의 존재는

뉴스 한 번으로 온 동네의 문단속의 이유가 되니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주인공은 흥미롭다.

물론 다른 이유가 있지만. 이건 스포가 될 수 있으므로 패스.

개과천선한 것이 아닌데도, 그를 한 인간으로 보이게 한다는 점.

그래서 어느 순간, '그래도 이 놈이 저 새로 나타난 연쇄 살인범에게는 잡히지 않아야 할텐데.'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어이없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는 거다.

 

사실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고, 책의 내용도 길지 않아 한 번에 읽기에 굉장히 좋다.

몰입도도 훌륭하고 문장도 군더더기 없이 세련됐다.

게다가 무엇보다 굉장히 유머러스하다.

주인공의 말을 듣다보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렇게나 섬세한 유머스킬이라니.

말에서 주는 쾌감이랄까.

그런 감탄을 주는 구절들이 꽤나 많으니 읽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을거라고 자신한다.

 

그리고 읽고 나서는 당황스러울 수도, 멍할 수도, 있겠다.

기대했던 것이 나오지 않았지만,

기대하지 않았다고 해서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우아한 농담과 서늘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시간과 마주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고.

어쩌면 피하고 싶어도 피할 길 없는 아찔함을 경험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본인이 이 책을 권하는 이유는 하나다.

단숨에 읽어내려가는 이 짜릿한 재미.

그 재미를 허무하게 만들지 않는 작가의 시간에 대한 여운이 남는 질문까지.

휴일을 보내기에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의 공백을 채우기에도 부족함 없는 선택이 될 수 있는 책이므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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