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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1 ㅣ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이주헌 지음 / 학고재 / 1995년 6월
평점 :
절판
유럽의 살아 숨쉬는 그 많은 문화들 중에 우리의 눈을 유난히 잡아 끄는 것 몇가지. 그 하나는 흡사 고대의 어느 시간, 중세의 어떤 거리를 걷고 있는 것 같은 잘 보존된 건물들. 그리고 한 번쯤은 꼭 가보겠다고 벼르게 만드는 미술관들. 이번 여름. 사상 유례없는 폭염이었다는 그 유럽을 직접 밟으면서 난 가능하면 미술관들은 빼놓지 않고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계의 걸작이라는 작품들을 내가 언제 또 보겠냐는 여행자다운 오기와 그럭저럭 가진 미술에 대한 관심을 채우고 픈 초심자다운 호기에서 나왔으리라. 어쨌든 난 600페이지가 넘어가는 서양미술사를 읽는대신 보기에도 들기에도 가벼운 이 책을 선택하고 뿌듯하게 유럽을 향했다.
하지만, 이 '가벼운-양적으로-'책이라는 것이 무척 안타까운 일이었음을 새삼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예술을 느끼는 것은 물론 마음이다. 그 마음이란 것이 가끔은 머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도통 반응할 줄 모를때가 있다는 것이 문제지만..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와 대영 박물관부터 프랑스의 오르세와 루브르박물관까지. 나는 저자 이주헌씨가 바라본 작품들에 대한 느낌과 개괄적인 평에만 매달려야 했다. 물론, 오디오 가이드의 지원이 있었지만 영어와 프랑스어, 이태리어, 독일어 그리고 일본어로만 듣기에는 한계가 있는 어학수준이기 때문이다.
우선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들어서기 전, 전체적인 작품관을 읽기에는 적당한 책이라고 본다. 그 당시의 화풍이라든가 아니면 짧은 세계사적인 지식까지 포석을 깔아놓은 이 책은 입문서로는 무척 마음에 드는 책이다. 순수 저자의 생각이라는 것만 유념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어떤 감상이나 느낌이 순수 자신의 것이 아니겠는가..
재미있고 논리적이며, 쉽고 분명하다. 이것이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드는 생각이다. '아~ 저자는 이런 부분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구나. 이 미술관가면 이 작품은 꼭 보고 와야지. 이런 배경이 있었구나. 때론 아니 고작 이 작품이야? 실망이네..' 라는 생각이 정말 명백하게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작품들을 볼 때, 몰랐던 사실들을 보게도 되고 그럼으로써 그 작품에 대한 애정도 깊어진다.
반면에, 그 분량면에서는 갈증해소가 어렵다. 미술관의 한쪽 구석만을 들어다 놓은 느낌이랄까? 알 수 없는 많은 작품들 앞에서 느끼는 막막함은 의외로 크다. 그 많은 미술관, 그 많은 작품들, 그 많은 시간들을 책 한, 두권에 옮겨놓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감안한다면 나처럼 당장 미술에 관한 책을 사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미술관을 순회할 생각이라면 찬찬히 시간을 내서 다른 책을 좀더 돌아보는 것이 좋을 일이다.
이 책이 나빴냐구? 천만에! 지루한 시간을 이 책을 통해 얼마나 큰 호기심과 기쁨으로 바꿨으며 때로는 중요한 정보를 얻기도 했다. 나의 여행과 함께 했던 책이었음이 분명하다. 단! 이번 겨울, 혹은 내년 여름 유럽의 미술관을 돌아보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은 분이 있다면 이 책은 입문서 정도로 삼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짧은 소견이다. 유럽, 그 이름만으로 충분히 낭만적인 그 곳. 도시마다 우뚝 서 있는 미술관은 하나의 부러움이며 이 책은 그 부러움으로 가는 길목 역할을 톡톡히 해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