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을 사랑하라 - 20세기 유럽, 야만의 기록
피터 마쓰 지음, 최정숙 옮김 / 미래의창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누군가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일' 내가 이 책을 읽고, 생각하고 느낀 바를 말한다면 이 한 마디안에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유럽이 가진 고풍스런 거리와 건물들과 유럽이라는 단어가 가진 세계에서 차지 하는 위상과 수많은 이야기들과 역사와 많은 문화들을 동경하는 보통의 대학생이다. 나는, 보스니아 내전에 대해서 작은 책임을 느끼지 않아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강간하고 모든것을 빼앗는 그런 일들은 언제나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믿고 있는 대다수의 지구인이다.

물론 아직도 나는 지구의 한쪽을 차지하는, 유럽과는 먼 한국에서 살아가는 대학생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몇 년 전 보스니아에서 일어났던, 정말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게 만드는 잔인했던 그 날들에 진심으로 분개한다.

차마 다시 입에 담기도 끔찍한 살인의 장면, 일상적으로 언급되는 강간과 학대와 무차별 폭격등이 그것도 서로 이웃해 살던 사람들끼리 얽혀져 벌어지고 있을때, 알량한 정치적 회담은 자신들의 정치적 역량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벌어지고 있었다. 인종과 종교때문에 어제까지 같이 먹고 마시던 이웃들의 머리에 총을 쏘아대는 사람들의 잔인함에, '자국'이 아닌 '개인'의 이익을 위해 그들을 그렇게 밀어낸 소위 높은 사람들의 비열함에 나는 내가 알고 있던 흔한 인간의 모습을 다시 그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인간이란 가능성이 있는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하면서 난민에게 돈을 쥐어주며 눈물을 흘리던 한 기자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믿기지 않을만큼 많이 울었고,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고 수 많은 수술을 했던 의사를 기억한다. 그 의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어떤 사람은 중절모를 어떤 사람은 구두를 어떤 사람은 옷등을 모아 그 의사에게 입혀주는 장면을 기억한다. 우스꽝스럽게 변해버렸지만, 그래도 그 옷을 입은 의사는 아직 우리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모습이다. 양심을 속이지 못해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에서 뛰쳐나와 가능성없는 싸움을 하던 외교관은 아직은 우리 세상이 그렇게 썩은것만은 아니라고 날 위로 한다.

나는 37명이 죽는 모습을 보고 국민에게 정책상의 신뢰를 잃을까봐 걱정한 강대국의 대통령의 모습은 책임을 잃어버린 인간의 모습이라고 감히 말한다. 배곯고 얼어 죽고 언제나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들의 겁에 질린 얼굴에 관심갖지 않은 것은 우리의 잘못이라고 감히 스스로를 꾸짖는다. 스스로의 도덕적 책임과 인간의 양심에 귀기울인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상주의적 발언으로 끝맺음한다.

이 책은 이런 책이다. 그 날의 우리의 잔인함을 고발하고 우리의 비열함을 들추어 내며,우리가 우리의 책임을 지켜내고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부탁하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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