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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열정적인 환경보호론자는 아니다. 밍크코트를 입는 여자들을 경멸하지만, 추운 겨울 발가벗은 몸으로 시위를 하지는 않는다. 야생동물에 대한 관심이 많지는 않지만, 정력에 좋다는 이유로 살아있는 곰의 쓸개를 조금씩 빼먹는 무식한 남자들에게 환멸을 느낀다.대부분의 사람이 느끼는 정도의 환경친화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고,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자주 그 사실을 잊은 채로 살아간다.
이 책을 읽는 순간에는 그 사실을 기억한 채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덮는 순간 다시 잊혀질 사실일지 몰라도, 우리네 인간이 자연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는 것은 조그만 감동과 함께 잔인한 자각을 하게 된다. 잘 알려진 책이기 때문에 줄거리를 간추려 얘기해 보자면 이 책은 연애소설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한 노인과 인간에 의해서 새끼를 잃고 수컷을 잃은 암컷 살쾡이의 사투를 다룬다.
많은 분량의 책이 아니지만, 이 이야기가 축이 되어 작가는 인위적이 아닌 자연속에서의 그들만의 삶과 죽음을 얘기하며, 인간이 만들어가는 위선으로 세워진 인간공동체에 대해서도 꼬집는다. 무지함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잔인한 행동이 날 짜증스럽게 만드었다. 믿을건 오로지 총 한자루인 그들은 그들의 힘을 자랑하기위해서 고작, 손가락 길이에 불과한 어린 살쾡이들을 죽인다. 어린 살쾡이들을 보호하던 수컷에 죽지 않을 총상을 입힌채 도망한 그들의 행동에 살쾡이에 대한 애정이 조금도 없는 나는 화가 나버린다.
왜냐하면, 그 수컷살쾡이의 편안한 최후를 위해서 안토니오가 그 살쾡이를 죽이는 장면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미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인간이 다가가도 저항할 수 없게된 그 살쾡이의 눈을 감겨주는 안토니오. 그리고 안토니오는 그들과 함께 죽기를 원하는 암컷 살쾡이 역시 그의 손으로 숨을 끊는다. 얘기는 단순하다. 대결구도도 간단하다. 하지만, 나는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인간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당연히 그렇다.
하지만 자식을 따라 자기 짝을 따라 죽기를 결심한 살쾡이의 슬픔과 분노를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그런 권리와 함께 묻는다. 인간이 편하기 위해서 자연을 죽이는 권리는 과연 정당한것인가.. 우리에게 자연이 주어진 이유는 그것을 훼손시킴으로써 얻는 이익을 위해서일까.. 자연이 주는 그 많은 이익들을 어떻게 설명할까. 또한 인간이 그것들을 적절하게 잘 사용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자연과 인간이 따로따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은 자연을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인간을 위해서다. 어쩌면, 그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채로 우리의 삶이 진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