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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꽤나 당혹스러웠을테지.. 모르는 남자가, 갑자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지도 않는 당신에게 다가와서 듣고 싶지도 않은, 게다가 쓰레기같은 얘기를 해댔으니.. 그만의 '양심'과 '죄의식'을 가장한 채 그가 입밖으로 내놓는 모든 이야기들에 역겨움을 함께 느꼈고 말이야.
아, 물론 도망가지도 피하지도 못할 만큼의 그 끈질김에 그저 포기한채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방법을 택한건 이해해. 도망갈 구석이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었어.
나중에야 당신도 알게되지만, 어쨌든 당신은 그 순간 당신답지 못했잖아. 그렇게나 잘 숨어왔으면서..왜 그앞에서는 침착하지 못했지? 뭐, 어쨌든 처음에는 조금 지루한 듯 싶었던 당신들의 대화가 제법 흥미진진해졌으니까 당신이 그 사람하고 대화를 하기로 결정한 바보같은 선택에 대해서는 그저 눈감아줄 생각이거든.
그래 맞아. 그가 한 얘기는 '정상적으로'자란 당신이나 나 같은 사람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얘기는 아니야. 평범하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가 이 사회에 어울릴만한 사람은 아니라는건 금새 드러나니까.
살인.
이렇게 말해놓고 나니까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한것 같지만, 그가 저지른 살인에 대해서 얘기를 들을 때 난 아주 소름끼쳤다고. 당신도 그랬잖아. 아마 나라면 그 자리에서 경찰을 불렀을꺼야. '여기요! 세상에서 제일 파렴치한 인간아닌 인간이 있습니다. 짐승보다 못한 짓을 하고도 저렇게 뻔뻔스럽게 거리를 활보하고 나를 괴롭히는 저 인간을 당장 가두어 버리시오.'
하지만, 사실 당신은 그럴새도 없었긴하지. 맙소사!! 세상에. 당신이 놀라고 당혹스럽고, 또한 그 자를 향한 그 분노의 감정을 나는 백번 이해해. 그렇고 말고.. 그 자는 정말, 한 마디로 말해서 '쓰레기'야. 그리고 그것보다도 더한 감정이 솟아났지. 그건 바로..두려움이야. 그 웃는 얼굴이 그의 말투와 행동들이 그가 얘기한 그의 모든 기억들이 날 두렵게 했어. 그에게 느끼던 한 순간의 역겨움이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감정들로 변한거지. 모르겠어..난 상상도 할 수 없어. 그럴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말이야.
그래, 당신도 그렇지. 직접 그자를 상대하는 당신이 너무나 가엾어. 어서 빨리 당신이 그 자리를 벗어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 비겁하다고? 하지만, 이런 비겁함정도는 저자 앞에서는 애교에 불과하지 않겠어? 난 더이상은 당신과 그에 관한 얘기를 할 수는 없어. 끝까지 보지 않고 내 얘기를 듣는다면 분명 다른 사람들은 실망하고 말테니까. '끝'을 보고 나서는 그들도 나와 같은 기분이 되어버릴꺼야. 그 전에 그들의 흥을 깨어버릴 수는 없으니까, 이쯤에서 그만 얘기할까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