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문 10
황미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5월
평점 :
절판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장면..무너지는 시그너스를 향해 무릎을 꿇고 외쳐대던 필라르 '신이여-!' 그리고, 화면뿐만아니라 내 눈가까지 적셔버린 그의 애통하고 슬픈 피의 절규.

<레드문>을 끝까지 보는 것이 두려워진것은 어느 부분부터였을까? 칼에 찔리고, 총에 맞고, 터지는 폭탄속에서도 살아남는 그를 보면서 어느 순간부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 생각- 이 책을 덮을때 쯤 되면 어쩌면 나는 필라르를 잃어버리는 것을 봐야할 지도 모른다는-이 계속 내 머릿속에 남아버렸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운명, 사실 그런 영웅들은 많이 보아오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들에게 불안감을 느꼈던 적은 없었다. 그들 주위에는 그들을 위해 대신 죽어줄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언제나 난 그런 영웅들보다 주위의 그 사람들이 언젠가는 죽을테지라며 그들을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그리고, 약간의 반발..영웅이라니.무슨 이런 영웅이..그렇게 억울한 심정을 느끼게 하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필라르에게 느껴지는 감정은 그것이 아니었다. 책이나 영화에서 '희생'이란 주제를 다룰때 가끔은 억지스러운 단지 가상일뿐인 만들어진 감정만을 느꼈었다. 그렇지만, 필라르에게는 그렇지 않았다고 진심으로 말해주고 싶다. 숭고한 희생- 이 말이 어울릴 수 있는 몇 안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희생을 통해서 그들의 강함과 특별함을 부각하려는 다른 작품들과는 통해 그의 희생은 말그대로 모두를 위한 희생이었을뿐이다.

그를 위해 점을 치던 지화가 죽었을때, 그는 울면서 피를 토했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나도 울었다. 자신의 힘을, 모습을 모두 아즐라가 가졌을때도 울 수 밖에 없었다. 맙소사! 영웅이, 태양이 이런 모습이라니..이제 그는 당당한 그의 모습을 찾지 못할거라는 불안감이 안타까움이 나의 마음을 덮었을때. 그가 사랑하는 유일한 아가씨 루나-그의 달-은 아즐라에게로 향했다. 그는 그의 모든 것을 잃어가고 있었다. 무서워졌다. 그리고 사다드조차도 또 다른 태양 아즐라를 느끼고 있었다.

아즐라를 감싸 안으면서도 외로운 자신의 볼키에 눈물흘리는 루나를 보며, 유일한 자신의 태양인 필라르의 슬픔대신 아즐라의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사다드를 보며, 나는 그만둬주길 바랬다. 필라르에게 향한 내 마음은 정말 오랫만에 느껴보는 완전히 동화되어 버린 연민이었다.

이렇게 이 책을 읽는 내내 한 순간도 한 눈팔지 않고 필라르에 대한 감정이 끊임없이 솟아날 수 있었다는 것은 나는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밤을 새면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무언가 다른걸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무엇을했었더라도 이만큼 큰 만족감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아마, 다른 사람들은 아즐라의 아픔에 더 공감할 지도 모르겠다. 필라르를 좋아하지만, 차마 아즐라를 미워할 수 없었던 나처럼 말이다. 그리고, 아름답고 강한 필라르의 유일한 사랑인 루나에게 빠져버릴지도 모르지. 슬픔때문에 지쳐서 우는 나약한 사람대신 쓰러져도 언제나 다시 일어서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우니까. 그리고,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사인 사다드의 진심으로 이루어진 충성심을 매력적으로 보게 될것이다. 그리고 그 사다드를 언제나 가슴한켠에 슬픔을 간직한채 바라보던, 종잡을 수 없는 데스티노도, 진희와 지화..이 많은 인물들이 가진 유일한 무기는 '희망'이었다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지금 필요한게 무엇인지 조금은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물론 조금 슬프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슬퍼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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