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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재구성 - 제28회 신동엽창작상 수상작 ㅣ 창비시선 306
안현미 지음 / 창비 / 2009년 9월
평점 :
와유(臥遊)
내가 만약 옛사람 되어 한지에 시를 적는다면
오늘밤 내리는 가을비를 정갈히 받아두었다가
이듬해 황홀하게 국화가 피어나는 밤
해를 묵힌 가을비로 오래오래 먹먹토록 먹을 갈아
훗날의 그대에게 연서를 쓰리
'국화는 가을비를 이해하고 가을비는 지난해 다녀갔다'
허면, 훗날의 그대는 가을비 내리는 밤 국화 옆에서
옛날을 들여다보며 홀로 국화술에 취하리

시집 앞부분에 나온
어항골목이라는 시를 읽고
생각이 많았다.
좋은 시는
소리내어 읽기도
속으로 읊조리기도
손가락으로 두들기게도 한다
그리 책장을 넘기니
전혀 다른 분위기의 시가
한 구석에서 빼꼼이 분위기를 풍기며 있다.
스펙트럼도 다양하시지.
허나, 본디 사람이란 그러하지 않는가
이 끝에서 저 끝이 태평양 망망대해만큼이나.
오지랖도 고향이 거기
욕심도 고향이 거기
시심도 고향이 거기
그리하여, 나도 써 본다
나의 바다에도 비슷한 삘의 물고기가 노니나니.
내 앞에도 한장의 한지가 놓여진다면
다 흘러 가버린
지난 날 빗물자국들을 한번 쓰담아 주리
수북히 쌓인 연시는
받을 이 없어
홀로 날린 지 오래
따스한 날이면
더 하얗게 피는 꽃잎은
기왕지사 바람에 날려도
그 손길의 기억으로 떨어지고 싶은 꿈을 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