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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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라는 단편집에 

첫번째로 나오는

그 짧은 단편인 봄밤.

페이지 수가 서른 한 페이지밖에 안되는

그 소설 하나를 읽고,

나는 더 이상의 책을 읽지 못하고 덮었다.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권여선작가의 글은

공부를 아주 잘 하는 우리반 전교일등의

노트필기 같다.


딱 필요한 만큼만

요약하고, 정리하고, 차트를 그려 놓은..

그런 메마르고 정없는

그런 싸가지 노트같아서

빌려가서 벼락치기하는 반친구들이

그 사무적인,

그 뼈대만 남긴,

그 무심함에 투덜거리지만

핵심은 다 들어있음을 감탄하고 만다.


실패를..

연민을..

따스함을..

이리 표현할 수도 있다.


어린 아들을 뺏기고 술주정뱅이가 된 전직교사 영경과

그 영경의 표정에서 여자 노숙인을 발견한

진짜 노숙인 신용불량자 수환이가

후다닥 해버리는 친구의 재혼식에서 만나고,

지난 세월이 챙겨준 류마티스와 알콜중독에

둘이서 다정하게 요양원에서 살아간다.


모..뭐냐..?

리빙 라스베가스에 니콜라스 케이지냐..?


새로울 거 없는 서사에

딱히 더 새로울 거 없는 

모범생다운 분모와 분자로 표현되는 인간군상학까지.. 


..분자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놓으면 그 사람의 값이 나오는 식이지..


익숙하지만 건조하고

건조하지만 날카로운 통찰이

억센 뼈다귀처럼

목에 터억 걸려, 

읽는 사람 마음고생 시킨다.


그 마음고생끝에

심쿵이 있다.


그 심약한 두 주인공이

서로 죽을 힘을 다해 

서로를 보낼 때까지 버텼다는 거에..

자신에게 돌아 올 행운의 몫이 

서로라는 거를 알아보는 지점에 말이다.


그렇다.


무언가,

누군가,

죽을 힘을 다해 버틸 대상이 있다는 거

삶의 어느 고비에서 만나든

행운의 몫이 맞다.


그래서,

권여선작가는 전교 일등이고,

전교 일등의 노트나 소설은 

다정하지도..

친절하지도 않지만..

짧고 맞는 말만 적어 놓은

빠싹 마른 뼈다귀가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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