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yoonta 2007-01-06  

안녕하세요. lastmarx님^^
^^;; 뭐 저두 그냥 잊기로 했습니다. 그곳 쥔장님이 그래도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많이 주시는 분이긴하죠..^^ 기왕 lastmarx님이랑 몇마디 주고 받은김에 하나 여쭤보겠습니다. 맑스가 정치경제학(비판)을 중후반부터 연구한 것을 저는 좌파에 하나의 이론적 배경을 만들어 주는 발판이 되었다고는 생각합니다만 그렇다고 <자본>과 같은 저작이 과연 당시의 당면한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데 있어서 어떠한 도움을 주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라는 것을 이론적으로 규명하는 것도 물론 중요했겠지만 제가보기에 맑스는 당시의 현실운동의 문제들로부터 어느정도 물러나서 방관자적 입장에서 사태를 바라보려고 하였고 그 결과 그의 정치경제학저작들이 탄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오늘날 그의 사상을 공부하려는 많은 좌익?학생들에게는 큰 영감을 불러일으키긴 합니다만 책도 잘 읽지 못하던 당시의 피억압민중들에게는 그 책들이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잘모르겠더군요. 맑스가 좀더 실천적인 고민을 품고 있었다면 도서관에 틀어박혀 정치경제학 연구나 하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 단거죠. 어쨋든 맑스와 같은 천재가 소모적이고 비 생산적인 일에 휘둘리기보다는 독창적 저작의 저술에 더 시간을 쏟아붙은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그를 모든 좌파혁명가들의 대부쯤으로 바라보는 것에는 강한 거부감이 들더군요.. 그는 어디까지나 당시 사회의 변혁을 꿈꾸던 여러 좌파지식인들 중에서 유독 책을 잘쓰는 좌파 이론가중 한명이었을 따름인데 그를 마치 모든 좌파사상의 아버지 쯤으로 영웅시하는 것 같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lastmarx님은 어떻게 보시는지..^^
 
 
lastmarx 2007-01-06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맑스가 정치경제학 비판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후반이긴 하지만 그의 나이 20대였습니다. 그의 삶으로 보면 평생한 것입니다. 과도하게 ‘청년 맑스와 노년 맑스를 구분’하는 것은 20세기 중후반의 시선입니다.
*『자본』이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읽혔는지 알 수 없으나 노동운동가, 혁명가들이 관심을 가진 저작이었지요.
* 어쩔 수 없이 ‘방관자적 입장을 지키며’ 한때 ‘도서관에 틀어박혀 정치경제학 연구나 하는 것’은 레닌도 했던 것입니다. 맑스는 연구하는 걸 좋아했고 레닌이 조직건설에 더 노력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은 당시 상황에 따라 필요한 일을 했다고 봅니다.

lastmarx 2007-01-06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맑스가 ‘좌파혁명가의 대부나 아버지’로 여겨지는 것은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로 헨델이 어머니로 회자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오늘날 바쿠닌이나 프루동, 라쌀레를 따르는 이들도 좌파로 분류되지만 맑스주의나 맑스레닌주의처럼 널리 통칭되진 않지요. 혁명가나 영웅을 존경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닌데, 특정인을 우상숭배하고 그의 말을 경전처럼 받들고 다양하고 새로운 해석에 짜증내는 것은 문제겠지요.
* 맑스가 실천적 혁명가인가 좌파이론가인가 둘 다인가는 전기를 보고 평가하시기 바랍니다. 전기마다 관점이 다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19세기의 유럽의 노동자들이 21세기 한국의 국민들보다 책을 덜 읽을까요?

yoonta 2007-01-06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로 회자되는 것처럼 맑스가 좌파혁명가의 대부로 여겨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의견에는 공감하기 힘드네요..^^ 바흐의 음악에의 공헌 만큼 맑스가 좌파(맑스레닌주의적 좌파의 범위를 뛰어넘는 의미에서)전체에 공헌을 했다는 이야긴데 19세기 노동운동사를 자세히 보시면 별로 그렇지 않다는 점을 발견하실겁니다.^^ 사회주의는 맑스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생시몽,푸리에,오언등과 운동가들에 의해서 그리고 경제학도 프루동과 같은 아나키스트들의 작업들이 맑스이전에 있었고 인터네셔널에서의 맑스의 역할에 대한 평가도 다시금 이루어져야 한다고 저는 봅니다. 바쿠닌그룹의 활동을 단순히 조직을 와해시키는

yoonta 2007-01-06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파주의정도로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비에트식 교조주의적 맑시즘에 입각한 시각입니다. 당시 인터네셔널의 와해과정을 다시금 살펴보면 맑스의 중앙집권적 조직운영에 대한 바쿠닌진영의 반대는 지금에 와서보면 정당한 비판이었다는 것은 이후의 소비에트의 역사등이 보여주었죠. 많은 국내좌파지식인들이 착각하는게 19세기 유럽에는 좌파에 맑스주의자만 있는 줄 아시는데 바쿠닌주의자 프루동주의자 라살레주의자 조합주의자, 사회주의자등등 수많은 그룹들이 있었고 맑스는 그중 한 분파였을 뿐입니다. 그가 돋보이게 된것은 자본이라는 저작의 성공에 힙입은 바가 크고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레닌이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켰기 때문이겠죠

yoonta 2007-01-0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라서 맑스를 좌파사상의 대부쯤으로 여기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시각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당시의 맑스의 중앙집중식 조직운영원리는 레닌의 전위당이론으로 이어졌고 결국 스탈린주의로 귀결된 것으로 저는 봅니다. 따라서 저는 맑시즘을 정확히 재평가하려면 그의 자본과 같은 경제학책을 분석하기보다는 현실정치투쟁에 참여했던 그의 방식과 정치이론에 대해 좀더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lastmarx 2007-01-06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사용한 '좌파혁명가'에서 '좌파'로 지칭될 수 있는 사람들의 범위에 따라 논의가 달라집니다. 가장 넓게 그 범위를 설정할 때 맑스는 19세기 노동운동사의 한 분파일 뿐이겠지요. 동의합니다. 제가 아버지나 대부로 여겨지는 게 자연스럽다고 한 것은 가령 맑스레닌주의파는 맑스엥겔스를 숭상하지만 자신들을 프루동주의자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좌파들은 자신들을 맑스주의자라고 합니다. 양자가 모두 맑스라는 권위를 이용하려 하니 맑스가 대표자가 되는 것이지요. 유럽이든 한국이든 다 그렇지요. 실제로는 프루동처럼 생각하고 실천하면서 말로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lastmarx 2007-01-06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된 연유와 그런 편향적인 시각에 대해 님이 비판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좌파이론에 있어서 맑스의 성과, 역할, 영향이 음악사에서 바흐만큼 안 될까는 의문입니다. '대부'란 말을 님이 사용했는데 왜 저에게 항의하시는지요.^^
또한 정치적 - 주로 정당건설- 실천으로 평가하게 되면 역시 또 맑스주의는 레닌주의가 최고가 되지요.

yoonta 2007-01-06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맑스주의 레닌주의적 정당정치가 소비에트의 붕괴이후 파산한 정치이론이라는 것은 저만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맑스주의는 <자본>으로 철학적 이론적으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일수있지만 그의 중앙집중식 정당정치는 스탈린주의로 귀결됨으로써 그 생명이 다했다고 저는 봅니다. 그리고 "대다수 좌파들이 자신이 맑스주의자"다라고 하시는 말씀은 좌파운동의 역사가 일천한 국내에서나 통할수있는 이야기인것 같구요. ^^ 님한테 항의하는 건 없습니다. 이와같은 문답을 통해 님의 생각들을 한번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여튼 성실하게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페일레스 2006-08-31  

안녕하세요.
armarius.net에서 가끔 뵙다 창엽님의 네이버 블로그를 들여다 보기도 했는데 오늘 우연히 로쟈님 서재에서 찾아뵙고 건너와 봅니다. 글을 자주 쓰지는 않으셨지만 저는 왠지 모르게 좋은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끔 찾아오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리고, 환절기에 몸 건강하세요.
 
 
lastmarx 2006-08-31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우누리 시절 문화공장에서는 글을 많이 올렸는데, 인터넷 시대에 강박사님 사이트에서 글을 많이 쓸 일이 없었습니다. 맑스와 관련해서만 살짝 소통할 뿐이지요. 누군가에게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알라딘 서재도 알차게 꾸미면 좋겠으나 블로그 두 개 관리하는 게 좀 귀찮네요. 또 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