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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갈대 -상
펄 벅 지음, 장왕록 외 옮김 / 도서출판 동문사 / 199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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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제목이자 주제인 '살아있는 갈대'입니다. 갈대는 하나가 죽어도 그 자리에는 또 다른 갈대가 자라납니다. 그 갈대가 꼭 죽어야 할 운명이라면 말입니다.(p.72)
양(陽)의 연인이었던 마리코가 그에게 보낸 전보의 내용을 기억하지요? '살아계신가요?' 라는 그 말을 말입니다. 그래요, '봄이 되면 대나무의 늙은 뿌리에서 푸른 새순이 솟아난다.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야. 인간이 태어나는 한은'(下-p.310) 이라는 연춘의 말을 기억합시다. 갈대는 그 자리가 꺾여지고 뽑혀지고 폐허가 되어도 다시 돋아 납니다. 나는 한국 민족이 그 역사에서 대나무와 같이, 그 순이 뽑혀지고 처참히 밟히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민족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더구나, 사람은 생명과 사랑의 고귀함을 지키는 것이 삶에서 누구보다도 몇 배의 노력을 가져야 함에도 그것을 지키는 사람과 민족이 더 굳세고, 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나의 글과 이런 활동들이 지금 이 시점에서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래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만드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들이 받을 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나은 모습과 좋은 모습은 모범으로, 악한 행위는 피해야 할 본보기로 전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른이 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은 아직도 많은 시간을 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앞에 놓여진 미래에 있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위해 애쓰는 누군가의 손길이 하나라도 더 보태어 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사람에게 가지는 사랑과 존재의 존엄성을 잊지 말고, 순수한 이해와 믿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늘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살아있는 갈대』를 통해 이 소설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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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벅의 작품을 좋아한다.
펄벅이라는 존재, 그것이 문학과 역사를 통해 어떤 의미로 현대 사회에 받아 들여 질 수 있을까?
그녀라는 존재; 중국에서의 출생, 신실하지만 무뚝뚝한 목사였던 아버지, 누구보다 강했던 어머니, 두 번의 이혼, 장애자였던 딸, 노벨상의 환희, 부유한 맥주 거품 같던 중국에서의 삶과 기록, 당시 시대의 특별한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동서양이 정략 결혼처럼 독특하게 만났어야 했던 정신적 혼혈아의 유년시절, 그리고 그 반복의 삶, 펄벅재단의 설립, 80여 편에 이르는 끝없는 잠식의 창작욕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소설, 외국인이 집필한 근·현대의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흑백 사진과 같은 '유일한' 소설인 『살아있는 갈대』에 과연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소설을 읽고서 만일 그녀가 살아 있다면 아마 위와 같이 평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소설이 다분히 미국의 시각에서 서술한 부분이 존재함은 부정치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뛰어 넘어 작가는 자신의 객관적인 시선인 '휴머니즘'의 관점을 잊지 않았다. 그것이 이 소설이 어느새 편협하고 여유를 잃어 버린, 그리고 한국인이 한국인으로의 모습을 다시금 생각하고 싶은 '한국인' 이라면 한 번쯤 읽고 넘어 가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 그녀가 한국을 위해 남긴 작은 선물의 의미를 찾아 보길 바란다.
꼭 지금 찾을 수 없더라도 좋다. 하지만 이 소설의 마지막 파란 책갈피를 넘기는 순간, 분명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좁게는 한국인으로서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고, 넓게는 역사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마음 속 어딘가 잃어 버린 작은 불씨를 찾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