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정 -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나를 지키다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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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면을 구비하는 게 특히 중요해진 요즘이다. 평소에 암만 튼튼한 내면을 구축해 놓아도 한국사회에서는, 곳곳에 위기가 도사린다. 설날과 추석이 그것이고, 취업과 결혼이 다음이다. 이보다 큰 공포는 이러한 위기가 반복된다는 것이며, 그 종류는 훨씬 더 다양하고 개인적이라는 것이다. 이를 테면 취업은 언제 할 거니? 수입은 얼마니? 결혼은 언제 할 거니? 아이는 언제 낳을 거니? 그래서 공무원 시험은 언제니? 등등.

물음표는 총구가 되어 우리의 내면을 겨눈다. 아아, 때론 명상을 통해, 또 때로는 영화를 통해, 만리장성처럼 고이 쌓아온 우리의 내면은 손쉽게 부서진다. 오늘 소개할 신간은 정민 교수의 <습정>.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나를 지키다, 라는 부제가 붙었다.

2.

<습정>이 어떤 책이냐 묻는다면 마음을 다스리는 글 묶음이라 하겠다. 각 장에는 침정신정, 능내구전, 등의 사자성어가 제시되며 이에 관한 저자의 고찰 등이 후술된다. 사자성어를 비롯해 많은 고전과 야화를 다룬다는 점에서 <울고 싶지? 그래 울고 싶다, 신정일 저, 김영사>를 떠올리게 되는데 어딘가 통속적인 제목과는 다르게 어두웠던 시기에 큰 위로가 되었던 책이다. <습정>역시 책 어디를 펼쳐도 마음을 다스리는 데 탁월한 이야기가 스며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고전사료가 깃들어 있어 옛 선조들의 묵은 지혜를 체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3.

고전사료를 동력삼아 글을 묶은 책이라 잡다한 수식보다는 책의 일부를 소개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뻔한 어구를 <습정>에서는 어떻게 다룰까. 책은 별다른 미사여구 없이 바로 명나라 왕상진이라는 (나로서는) 낯선 학자의, <일성격언론, 섭세 편>의 말을 소개한다.

무릇 정이란 다하지 않은 뜻을 남겨두어야 맛이 깊다. 흥도 끝까지 가지 않아야만 흥취가 거나하다. 만약 사업이 반드시 성에 차기를 구하고, 공을 세움에 가득 채우려고만 들 경우, 내부에서 변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반드시 바깥의 근심을 불러온다(P209).

즉, 이러한 원문을 소개한 후에 저자의 통찰이 후술된다. 사람들은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남는 것은 회복 불능의 상처 뿐이다 더 갈 수 있어도 머추고, 끝장으로 치닫기 전에 머금어야 그 맛이 깊고 흥취가 커진다. 저만 옳고 남은 그르며, 더 얻고 다 얻으려고만 들면 , 없던 문제가 생기고 생각지 못한 근심이 닥쳐온다(P210).

책은 이런 식의 주제를 4부로 나누어 다룬다. 사실 자꾸만 무너지는 내면을 세우는 데는 책만한 것이 또 없을 것이다. 잠깐 세상이라는 총알을 피해 고전의 품에 숨고 싶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습정>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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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동 : 위기, 선택, 변화 -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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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총, 균, 쇠>라는 획기적인 저술로 대한민국을 휩쓴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신간을 소개한다. <대변동>을 러프하게 소개하자면 현대사회의 만연한 위기를 소개하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에 관한 통찰이라고 하겠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프롤로그와 1장에서는 '개인'이라는 단위에서의 위기를 파악한다. 이후, 일본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의 역사와 당면한 위기를 살핀다. 당연하게도 마지막 3부에서는 그 위기를 두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다루게 된다. 따라서 <대변동>에는 위기, 선택, 변화라는 부제가 붙었다.

2.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가장 탁월한 점은 이러한 학술적인 주제를 에피소드로 풀어나가는 방식일 것이다. 많은 저널리스트들이 사용하는 방식인데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그것은 조금 다르달까. 경박하지 않고 어딘가 묵직하다. <총, 균, 쇠>의 총알을 장전시킨 질문은 한 원주민의 질문이었다. 그리고 저자를 스쳐나간 그 질문은 인종주의와 선민의식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수많은 편견들을 '과학적'으로 종식시켰기에 걸작으로 남았다. 그렇다면 <대변동>에서는 어떨까. <대변동>의 프롤로그는 두가지 이야기로 시작한다.

3.

첫 번째 이야기는 코코넛 그로브 화재 사건. 1942년 11월 28일 화재가 발생해 불길이 급속도로 번지며 손님들로 붐비더 코코넛 그로브라는 보스턴의 나이트클럽을 완전히 휘감았다. 질식이나 연기 흡입, 압사나 화상 등으로 총 492명이 사망했고......(p17)

그리고 이어지는 두번째 이야기는 1956~1961년 사이에 악화된 영국의 국가적 상황을 다룬다. 즉, 전술된 이야기는 개인의 이야기이며 후술된 이야기는 국가적 차원의 이야기다. 책의 전체적인 구성과, 그의 한 조각인 프롤로그의 구성을 이루는 일관된 치밀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저자는 프롤로그 뿐 아니라 책 전반에 걸쳐 적절한 에피소드를 양분처럼 공급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씨줄과 날줄 삼아 강한 장력을 조성하여 '위기'라는 주제의식을 극복할 혜안을 600여페이지에 담아 제공하는 것이다.

4.

<총, 균, 쇠>라는 걸작의 가장 훌륭했던 점 중 하나는 사회학적인 논의를 과학이라는 툴로 풀어냈다는 데 있다. <대변동> 역시 그런 부분이 돋보이지만 이는 <총, 균, 쇠>로 물꼬가 트인 하나의 작법이 되었으므로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대변동>은 저자의 전문분야를 대놓고 다루는 책이라 장르를 넘나드는 탁월함을 찾는 재미보다는 세계적인 석학의 어떤 통찰을 어깨 너머로 볼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책이라는 매체로 다루기에는 가변적이고 거대한 이 지구촌을 특정한 시선으로 포착해내는 저자의 실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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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된 자연 - 생물학이 사랑한 모델생물 이야기
김우재 지음 / 김영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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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공이 뭐예요?"

한국의 대학진학률은(떨어졌다고 하나 여전히) 70%를 웃돈다. 즉, 우리 중 열에 일곱은 무언가를 전공한 전문가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는 노트북에 파란 화면이 떴을 때 컴퓨터공학과를 전공한 친구에게 연락을 하게 되고, 묘한 대답을 듣는 것이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2.

우스꽝스러운 이 일화는 학과마다 각자의 형태로 전해진다. 오늘 우리가 알아볼 학과는 다름아닌 생물학과. 그렇다면 생물학과에는 어떤 이야기가 전해질까. 생물학자들끼리 만나는 장소에서 "저는 유전학을 연구합니다"처럼 구태의연한 수사는 없다. 그런 어이없는 소개를 들은 상대방으 ㄴ어리둥절한 얼굴로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뭐로 연구하시는데요?" (p17)

3.

즉, 생물학자들은 본인의 전공을 다루기 위해 준비물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모델생물. 우린 모델생물을 이용해 유전학이니, 분자생물학이니, 하는 생물학의 세부전공을 파헤치게 되는 것이다. 초파리가 대표적이며 예쁜꼬마선충, 지브라피시 등이 역시 잘 알려져 있다. 오늘 소개할 <선택된 자연>은 당연스레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은 모델생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4.

책은 총 30장으로 구성되며, 각 장을 할애해 대략 24종의 모델생물을 다룬다. 여기에 가장 대표적인 모델생물인 초파리는 제외되었는데 이는 전작인 <플라이룸>에서 다뤄진 바 있다. 모델생물을 통해 생물학일반을 다루는 저자의 전략은 탁월해보인다. 이를 테면, 10장의 옥수수 파트에서는 멘델과 매클린톡에 관한 이야기로 화두가 던져진다(p82). 비전공자 입장에서는 멘델 정도야 유전학의 어머니나 아버지라고 추측이 가능하지만 매클린톡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인 경우가 다반사이다. 하지만 매클린톡이 발견한 유전자의 jumping 현상은 학계에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로 전해진다. 바이러스의 기원을 여기서 찾는 학자도 있고, 향후 염색체 연구에 있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델이 되는 생물을 바탕으로 일반생물학 전반을 다루고 있어 구성적인 면에서 굉장히 유려한 모습을 보인다.

5.

전공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전공에 대한 이야기로 서평을 마쳐볼까. 앞서 말했던 컴퓨터공학과를 전공한 학생이 컴퓨터를 잘 모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질적으로는 더욱 깊고 디테일한 세부사항을 공부했기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는 전공의 세속화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공은 자본을 위한 도구적 툴로 기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물학같은 대부분의 자연과학이 존폐 위기에 놓여있다는 철 지난 우려도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우리가 다루기에 거대한 질문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선택된 자연>같은 자연과학의 기본교양을 쌓을 수 있는 책이 소중한 것이다. <플라이룸>에 이어 <선택된 자연>까지. 전공자들 입장에서는 전공서적들 사이에 파묻혔던 야화들을 재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며, 비전공자 입장에서는 선별된 교양을 안전하게 습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하고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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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 2020-03-01 0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의 의도를 너무 잘 간파하셨네요. 훌륭한 서평 감사합니다.
 
지능의 함정 - 똑똑한 당신이 어리석은 실수를 하는 이유와 지혜의 기술
데이비드 롭슨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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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현명하다고 믿는다. 우리의 추론은 심사숙고 끝에 내려진 합리적인 결정이며, 자유의지에 따라 능동적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미 2010년대에 샘 해리스는 <자유 의지는 없다>라는 저술을 통해 그렇지 않다고 얘기한 바 있다. 그리고 믿기 어렵지만 실제로 그런 듯하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우리는 면접관이다. 그리고 옆방에서는 기계장치를 이용해 우리의 뇌가 활성화되는 부위를 가시화하여 관찰하고 있다. 노크 소리가 들리고 면접자 2명이 들어온다. 이 때, 이미 승부는 결정된다. 옆방에서 우리의 뇌를 지켜보던 실험자들은 우리가 누구를 선택할지 이 때 특정할 수 있으며, 정확도는 90%를 상회한다. 하지만 면접관인 우리들은 15분간의 면접기간 동안 면접자들을 세심하게 관찰한다. 그리고 실제로 결정에 한참 뜸을 들인다.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라, 합리적으로 숙고하고 내린 결정을 옆 방의 실험자들은 노크소리와 동시에 판단한다. 우리는 이것을 자유의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지능의 함정>은 총 4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우리 지능의 허점을 다루고 이후 3부는 현실적인 지능의 활용법을 제시한다. 뇌과학적인 측면에서, 때로는 심리학적인 지점에서 우리의 약점을 공략하기 때문에 책은 신뢰를 더한다. 샘 해리스의 저서가 자유의지라는 현상파악에 급급했다면, <지능의 함정>은 얼마간 실용적인 지능의 활용의 방점을 둠으로써 차별화를 시도한다. 적절한 이미지와 그래프는 덤이다. 4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지능의 함정>을 통해 우리는 부인할 수 없는 우리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사례로써 목도한다. 본 책은 우리의 어리석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지혜를 실천할 수 있도록 넉넉한 팁들을 제공해 줄 것이다. 아직도 우리가 현명하다고 믿는가? 이 책을 결국 집어 들었다면 우리는 조금 나은 대답을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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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기와 거주하기 - 도시를 위한 윤리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임동근 해제 / 김영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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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자의 이력소개가 필요할 듯하다. 리처드 세넷은 런던정치경제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강의하는 교수이다. <짓기와 거주하기>라는 제목은 얼핏, 건축이나 미학으로 흐를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정작 책을 펼쳐보면, 카테고리를 특정하기 쉽지 않다. 새로운 장르의 내용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새로움은 다름 아닌 저자의 제1전공에 기인한다. 다름 아닌 사회학이다. 또한, 유엔해비타트나 유네스코를 넘나들며 저자가 적립해 온 발자취는 필연적으로 이런 아름다운 책으로 이어지는 발판이 된 모양이다. 이 책을 단어로 정의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을 구획화 할 기회를 준다면 나는 <짓기와 거주하기>를 ‘도시윤리학’이라고 명명하겠다.

책의 프롤로그는 세 가지 형용사로 시작한다. ‘비틀린, 열린, 소박한.’ 이 우아한 시작은 도시라는 테마에서 이 책이 종횡무진할 방향을 짐작케 한다. 이를 테면, ‘비틀린’으로 시작하는 책은 도시(city)를 정의하며 시작한다. 언어학과 종교학이 양념처럼 뿌려지며, 책은 신뢰를 더한다. 도시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 언어학과 종교학과 사회학과 윤리학이라는 거대담론이 한 데 모여 이토록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빛을 내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이 책은 어떤 의미에서는 도시라는 테마를 이용하여 개인과 개인이 이루는 사회를 설명하는 듯도 보인다. 결국 우리 대부분은 도시라는 형태 속에서 살아가야 할 개인이다. 즉, 도시의 이해는 개인의 이해로 이어지는 또 다른 가능성임을 왜 여태 몰랐을까. 나를 사랑하는 방법 따위는 서점 어디에나 널려있지만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작금의 무기력은 그런 허무에 기인한다. <짓기와 거주하기>는 도시윤리학을 통해 개인의 공허를 메울 신선하고도 우아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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